유모차 끌고 뉴욕

상품 디자인과 공간 스타일링, 독창적인 예술 감각을 지닌 두 절친 아티스트 엄마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떠났다. 뉴욕의 숨겨진 아트 스폿 곳곳을 유모차 끌고 용맹하게 누빈 엄마들의 개성 만점 여행기.

용감한 엄마들

포토 스튜디오 ‘팔 사진관’과 라이프스타일 숍 ‘팔 스토어’를 운영하며 자체 제작한 상품을 판매하는 이혜나 대표와 빈티지 컬렉터이자 수집한 오브제로 다양한 아트워크를 진행하는 ‘고취소관’의 고리원 소장. 평소 아름다운 것과 심미적 가치가 있는 기물을 수집하는 고리원 소장과 일상을 감각적으로 만드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이혜나 대표는 SNS를 통해 서로의 콘텐츠와 활동을 지켜보다 지난해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특별한 돌상 전시 <잔치잔치 열렸네> 프로젝트를 협업하며 인연을 쌓았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난 두 사람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연령대가 비슷한 자녀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어 가까워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평소 일상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는 두 사람은 여느 날처럼 브레인스토밍 같은 대화를 나누다 영감을 위한 아트 투어를 떠올렸다. 아직 아장아장 걷는 네 살 배기 아이들에 고리원 소장은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지만 함께하니 멀리 떠나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아이를 낳기 직전에 뉴욕에서 한 달 정도 머물 생각으로 호텔 회원권을 미리 구매했어요. 출산을 하고 육아에 파묻혀 살지 않으려면 텐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떠나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첫째가 벌써 네 살, 둘째까지 생긴 뒤였죠. 지금 아니면 실행에 옮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_ 고리원
“딸, 아들을 연년생으로 두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2017년 남편과 함께 사진관을 새로 오픈하면서 여행할 틈도 없이 시간이 지나갔어요. 아이들이 조금 크니 그제야 숨 고를 여유가 생겼죠. 지쳐 있던 제게 온전한 휴식이 필요했고, 너무 일찍 누나가 된 딸아이에게 미안하던 차, 이번 기회에 함께 떠날 결심을 했어요. 수고한 우리를 위한 선물로요.”_ 이혜나

아이들을 존중하는 예술 도시, 뉴욕

고리원 소장이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스폿으로 추천한 그레이스 팜스(Grace Farms).
일과 함께 전쟁 같은 육아를 해내면서도 반짝이고 밝은 눈을 잃지 않은 두 사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작업에 대한 열의는 식은 적 없지만 육아를 하며 새로운 것을 접할 기회가 줄어드는 시공간의 제약이 늘 안타깝게 느껴졌다. 의기투합한 여행의 목적은 영감과 새로운 자극 충전.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지만 한적한 휴양지 대신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메카인 뉴욕을 선택했다. 트렌디하고 과감하며 도전적인 도시, 뉴욕은 그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여행지였다. 유모차를 끌고 뉴요커들과 나란히 뉴욕의 트렌디한 거리를 누비다니! 여행을 준비하며 수만 가지 다양한 얼굴을 지닌 도시를 마주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다.
총 3주간 계획한 이번 여행의 테마는 ‘아트 투어’. 모마(MoMA) 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주변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뉴욕을 대표하는 대형 미술관과 갤러리, 박물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의 문화가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와 동행하는 가족에게 우선적으로 관람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어디서든 어린이들을 환대해주는 분위기는 ‘노키즈’ 존에 익숙한 국내에서와는 사뭇 다른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어디든 아이와 함께 입장하면 먼저 다가와 불편함이 없는지 도와주었어요. 티파니 본점에 갔을 때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에게 색연필과 색칠 공부 종이 등의 기념품을 챙겨주며 한쪽에서 놀게 해주더라고요. 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게 그런 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웠죠.”_ 고리원
“두 아이가 한동안 디즈니 스토어에서 산 백설공주 드레스만 입고 뉴욕 한복판을 돌아다녔어요. 아이들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녀서 호텔 도어맨부터 동네 주민들, 센트럴 파크에서 자주 뵙던 마차를 끄는 마부 아저씨까지 모두 알아볼 정도였는데 지나갈 때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스노 화이트’라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해줬어요. 아이들은 타국에서 어른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고 먼저 영어로 인사를 건네니 신기해하고 신나했어요. 어느 주방용품 가게의 직원은 드레스를 입고 간 아이들을 보고 공주님 대하듯 무릎을 꿇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자신의 이름을 써주며 으쓱해하던 딸아이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_ 이혜나

일상이 예술이 된 21일의 뉴욕 여행

3주간의 여행은 뉴욕에서도 가장 날씨가 좋은 계절인 지난 가을이었다. 아름다운 뉴욕의 가을을 만끽하며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뉴욕 중심에 있는 센트럴 파크를 비롯해 도심 곳곳에 위치한 크고 작은 공원들은 뉴요커들에게 최고의 휴식처. 제각기 다른 느낌과 모양을 지닌 공원들을 둘러보다 보면 뉴욕의 색다른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또 공원 내에서 수시로 열리는 공연과 이벤트는 아이들과 가던 걸음을 멈춰 서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다. 특히 센트럴 파크는 넓은 공원의 규모만큼이나 동물원부터 호수, 작은 놀이터까지 갖춰져 있어 아이들이 구경하고 뛰놀기에 좋다. 공원 곳곳에서 열리는 공연과 결혼식 또한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뉴욕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거리’다.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모여 있는 도심 속 거리는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살아 있는 갤러리였다. 개성 있는 건축물과 맨해튼 건물 로비에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보던 작가들의 대형작이 놓여 있어 발걸음이 닿는 대로 시선을 옮기면서 마음껏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었다. 패션 위크를 방불케 하는 멋쟁이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큰 도시이지만 하루 동안 짧은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뉴욕중앙역에서 출발해 뉴캐넌(New Canaan)역을 돌아 저녁에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건축가 필립 존슨이 건축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마을과 그레이스 팜으로 들어가는 별장 풍경, 글라스 하우스(Glass House) 등을 둘러볼 수 있어 아이들과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뉴욕 중심지와는 다른 아기자기한 시골의 정취뿐 아니라 할렘가의 풍경 등 차창 너머로 다양한 얼굴의 뉴욕을 마주한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추억의 일부분인 숙소와 레스토랑

소호에서 머물던 에어비앤비 숙소의 내부.
완벽한 일정에도 아이의 컨디션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곤란해진다. 21일이라는 짧지 않은 여행 중 멀고 낯선 외지에서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며 생활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숙소와 식사만큼은 아이들을 위주로 꼼꼼하게 신경 썼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뉴욕이지만 효율적인 동선과 아이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소호의 스튜디오형 아파트와 57번가에 자리 잡은 힐튼 호텔 두 곳에서 여행 기간을 나눠 머물렀다. 뉴욕에 처음 도착해 5박 6일간은 소호에 있는 스튜디오형 아파트에서 지냈는데, 낯선 곳에 와서 불편해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두 번째 숙소는 센트럴 파크 주변에 위치한 힐튼 호텔로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이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났다. 소호에서 머문 숙소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으면 뉴 뮤지엄이 위치해 있고 힐튼 호텔 근처에는 도보로 5분 거리에 모마 미술관이 있다. 또한 호텔 바로 앞에 센트럴 파크가 있었는데 공원 동쪽으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들이 밀집해 산책하듯 아이들과 미술관 나들이를 떠날 수 있었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고리원 소장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한국에서 생강 원액을 약 대신 챙겨갔다. 따뜻한 물에 레몬 반쪽 즙을 짜넣고 여기에 생강 원액을 타 마시면 감기 예방은 물론 여행 중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었다.
“집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 먹고 오전에 나가서 구경을 하다가 지치면 집으로 들어와 휴식하고 낮잠을 잤어요. 컨디션이 괜찮으면 근처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 산책하듯 다녀오고요. 실제 생활하듯 지내다 보니 뉴욕이라는 도시가 색다르게 느껴지고, 아이들도 잘 적응했어요. 일상 속 뉴욕과 뉴요커들의 모습에서 관광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또 다른 영감을 많이 얻었죠.”_ 이혜나
맨해튼 5번가 티파니 건물에 있는 블루 박스 카페(The Blue Box Cafe).
“여행할 때 숙소만큼은 꼼꼼히 고르는 편이에요. 아이가 어릴수록 동선이 효율적이어야 하고, 숙소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어 비용이 들더라도 만족할 만한 곳을 정할 것을 추천해요. 머무는 자체만으로 즐겁고 언제든 주변 동네를 산책하듯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요.”_ 고리원
아이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맛집’. 다양한 인종만큼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고 금방 질리는 까닭에 집에서 미리 자주 먹는 국거리, 즉석 밥, 밑반찬 등을 챙겨왔다. 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여행지에서 음식을 매번 직접 만들다가는 엄마들의 체력이 쉽게 방전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온 음식에 푸드 코트가 잘되어 있는 마켓의 음식으로 아이들의 식사를 챙겼다. 음식점을 갈 때는 여느 여행객들과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손님이 많은 미쉐린 가이드나 SNS의 유명 맛집, 의상 등 완벽한 식사 예절을 갖춰야 하는 곳은 아이들에게 불편할 수 있어 과감히 제외했다.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일정이 수시로 바뀔 수 있는 점을 감안해 사전 예약제의 레스토랑도 피했다.

엄마, 아이 모두 행복했던 특별한 시간

새로운 환경에서 영감을 얻고, 휴식을 하고, 프로젝트에 필요한 작품들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해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두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하루에 많은 곳을 둘러보기 힘들어 한 장소에 오랜 시간 머물렀어요. 미술관을 가더라도 전시만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 내부에 있는 카페테리아, 아트 숍 등 곳곳을 여유 있게 구경했어요. 센트럴 파크에 갔을 때는 지역 주민처럼 동네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니 급하게 보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일상을 느낄 수 있었어요.”_ 고리원
“서로 취향이 비슷해 함께 보고 느낀 것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생각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을 같이 하며 든든했어요. 멀리 가거나 조금 늦게 숙소에 돌아오더라도 안심이 되기도 하고 무엇이든 함께하다 보니 훨씬 즐겁고 쉬웠죠.”_ 이혜나
오랜 계획을 용감하게 실천한 두 엄마들. 일과 병행해야 하는 육아와 살림은 여전히 전쟁을 방불케 하지만 조금씩 자신들만의 방식을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두 사람은 이번 여행을 통해 일도, 육아도 혼자보다 함께하는 것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인상 깊은 ‘유모차 끌고 뉴욕’ 여행 이후 고리원 실장은 얼마 전 둘째를 출산하고 육아에 매진 중이다. 이혜나 대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어린이날에 열릴 가족사진 행사의 기획을 맡아 준비하고 있다. 올해 프로젝트 역시 두 사람이 함께할 계획이다.

엄마들이 추천한 뉴욕 스폿

카페와 레스토랑

테라스 5 Terrace 5
Add 11 W 53rd St, New York, NY 10019
Tel +1 212-708-9400
*모마 미술관 5층에 위치한 카페. 1층의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며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미술관 관람 후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
언타이틀드 레스토랑 Untitled Restaurant
Add 99 Gansevoort St, New York, NY 10014
Tel +1 212-570-3670
*가지튀김이 맛있는 곳.
K-밥 K-Bap
Add 62 W 56th St, New York, NY 10019
Tel +1 917-639-3814
*코리아타운에 가지 않아도 56번가에서 유일하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가성비가 좋다.
모토리노 피체리아 Motorino Pizzeria
Add 139 Broadway, Brooklyn, NY 11211
Tel +1 718-599-8899
*화덕 피자집으로 피자도 맛있지만, 뽈보 샐러드도 추천한다.
이탈리 Eataly
Add Four World Trade Center, 101 Liberty St #3, New
York, NY 10007 Tel +1 212-897-2895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고급 식료품점과 레스토랑을 뉴욕 스타일로 재해석한 독특한 콘셉트의 매장. 이탈리아 현지에서 세 곳 정도 가봤는데, 뉴욕이 가장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

모마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Add 11 W 53rd St, New York, NY 10019
Tel +1 212-708-9400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Add 99 Gansevoort St, New York, NY 10014
Tel +1 212-570-3600
구겐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Add 1071 5th Ave, New York, NY 10128
Tel +1 212-423-3500
디아비콘 Dia: Beacon
Add 3 Beekman St, Beacon, NY 12508
Tel +1 845-440-0100
그레이스 팜스 Grace Farms
Add 365 Lukes Wood Rd, New Canaan, CT 06840
Tel +1 203-920-1702
*디아비콘과 그레이스 팜스는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Editor_ Nam Kuk Hwa
Photos_ Lee Hye Na, Ko Ri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