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육아의 조건

워킹맘에게 아이 돌봄은 절실하다. 친정, 시댁의 든든한 조력을 받는 것도 행운이 있어야 가능한 일. 공립 보육 시설이 많다고는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불미스러운 이슈들로 엄마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아이를 위한 양질의 완전 돌봄은 과연 가능할까? 보육, 교육, 건축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뭉쳐 기본에 충실하면서 색다른 공간과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신개념 보육 서비스가 눈에 띈다. 즐거운 육아를 꿈꾸는 ‘한솔아이키움’을 이끌고 있는 박연정 대표를 만났다.

즐거운 육아를 위한 전문가들의 ‘완전 돌봄’ 솔루션

예전에는 온 마을이 아이 하나를 키웠다지만, 지금은 꿈같은 얘기다. 두세 명의 양육자와 기관이 마치 잘 짜인 공정처럼 한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야 겨우 한 아이를 온전하게 돌볼 수 있다. 그 와중에 양육의 기본은 당연히 쉽게 잊힌다. 한솔아이키움 박연정 대표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건축 컨설팅 기업 ‘예지학’에서 주거 서비스 개발을 담당했다. 그때부터 공동주택 내 완전 돌봄 주거 서비스를 기획했다. 맞벌이 등 육아 피로도가 높은 가정의 아이들이 대부분 ‘돌봄 공백’ 문제에 시달리고 있고, 이러한 문제를 해소해주는 양질의 보육 기관이 결국 주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건축과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로 공동주택 내 완전 돌봄 서비스를 제안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한국 보육 시스템의 취약점과 문제점을 알게 됐죠.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는 어린이집이 있지만 그 자체로는 완전한 돌봄을 실현하기 어려워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사고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고 당연히 보육 환경에 대한 질적인 관리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죠. 정부에서는 현실적으로 당장 어린이집을 늘리고 비용 감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러한 문제들을 접하면서 돌봄 공백을 해소하고 보육의 질을 높이는 공간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교실 내부 전경. 아이 눈높이에 맞춘 공간으로 인체에 무해한 천연 재료를 사용한 가구와 마감재 등으로 만들어졌다.
보육 및 교육 분야의 전문가와 공간 디자이너, 건축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솔아이키움’은 0~13세 자녀를 둔 가정에 ‘완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 설계한 공간은 모두 친환경 재료로 만들어졌고, 이 공간을 기반으로 양육에 필요한 모든 보육 서비스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운영 시간은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로 오전에는 돌봄과 아이의 발달 및 교육에 포커스를 맞춘 ‘핀덴클래스’가, 방과 후부터 밤 9시까지는 ‘완전 돌봄 서비스’가 지원된다. 아이 연령에 따라 케어리스트 1명당 돌보는 아동의 수는 3~6명 정도. 무엇보다 밤 9시까지 온종일 돌봄이 가능하고, 성장 발달을 고려한 식사와 건강 관리 및 통합 발달 교육 커리큘럼까지 제공되니 웬만한 보육 시설보다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병원·학원 동행, 방학 종일 돌봄, 개인 스케줄에 따른 맞춤 돌봄 서비스 등이다. 아침부터 한솔아이키움 센터로 오는 아이들은 다양한 스토리 독서 활동과 체육 활동, 핀덴 잉글리시 ORT, 놀잇감을 직접 만들어 보는 핀덴 MAKE 수업 등을 받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가 끝난 뒤 방과 후 돌봄을 위해 찾는 아이들에게는 연령에 맞는 놀이와 적절한 학습 코칭, 학원 스케줄 관리 및 간식과 식사가 제공된다. 아이가 아플 때는 케어리스트가 병원까지 함께 가 동행 진료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여러 아이가 함께 생활하다 보니 기초 생활 습관과 인성 함양에도 도움이 된다. ‘기관’이 아닌 또 하나의 ‘집’처럼 편안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한솔아이키움 김포한강센터는 연령에 따라 총 3개의 반으로 나뉜다. 교실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각종 교구와 책이 진열돼 있다.

양질의 보육 서비스가 주는 사회적 가치

부모들이 보육 기관에 기대하는 ‘양질의 보육’이란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이 모든 것을 한 공간에 구현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녀는 하나 둘씩 실천하고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중이다.
“지역이나 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핵심 서비스는 유지하되 융통성 있게 내용과 서비스를 다양화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마곡센터는 현재 회원제로 운영 중이지만, 김포한강센터는 회원이 아니라도 단지 내 주민이 사전 예약을 전제로 돌봄 쿠폰을 쓸 수 있도록 했어요. 또 돌봄 시간에 전문 강사를 초빙해 정기적으로 체육이나 미술, 음악 활동을 하는 것도 부모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하고 있죠. 한솔아이키움의 가장 큰 원칙은 ‘보육의 기본을 지킨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활동하고 놀기에 좋은 쾌적한 환경,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영양가 높은 먹거리,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기다려주는 태도, 따뜻한 스킨십과 긍정적인 반응 같은 것들이요.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면 이용자들은 더 많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가 추구했던 보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아이키움의 가치도 함께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복도 한쪽 벽면 전체는 마그네틱 보드로 꾸며져 있다. 아이들이 자석 교구를 활용해 한글과 숫자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디자인까지 고려한 인테리어다.
메인 홀에 위치한 감각놀이 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유해 물질이 없는 편백나무가 가득한 블록 풀이 나타난다.
한솔아이키움에서는 선생님 대신 ‘케이리스트’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케어리스트는 유아 교육 전문가와 아이들을 애정으로 돌봐줄 수 있는 지역 내 경력 단절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보육 시설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까지 창출하면서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박연정 대표는 스스로 ‘일하는 엄마’로서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처음 아이키움을 기획했을 때는 아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9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제가 상상했던 육아는 아이랑 여행도 가고, 동물원도 다니면서 항상 활짝 웃는 모습인데, 현실은 매일 바닥에 흘린 이유식을 닦고, 쌓여가는 젖병, 빨랫감들을 처리하느라 바쁘죠.(웃음) 동네 어린이집에 대기 순번은 100번대를 훌쩍 넘었어요. 하지만 다행히도 가깝게 살고 있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탄력 근무도 가능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끔 ‘만약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나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일을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엄마들에게 더욱 마음이 많이 쓰였고요. 그래서인지 한솔아이키움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을 때 기뻤어요. 경력 단절 엄마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의 가치까지 실현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상당수 많은 보육 기관의 문제 중 하나는 종사자들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노동 강도에 비해 보수는 적고, 심리적인 긴장도는 높다. 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보육 스트레스 또한 철저히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조부모나 베이비시터를 통한 일대일 육아도 마찬가지다. 이에 반해 아이키움은 케어리스트당 돌봄 아동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 여러 케어리스트들이 함께 협력해 ‘공동 육아’를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훨씬 적고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치유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자연스럽게 양질의 보육으로 이어진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행복한 육아

‘아이의 행복은 곧 부모의 행복이다’ 또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아이의 행복과 부모의 행복은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박연정 대표는 “아이키움을 아이가 행복한공간임과 동시에 일하는 엄마가 행복한 공간으로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육아로 인해 일상은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지만 목표는 오히려 명료해졌다.
“예전에는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좀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저랑은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얘기 같았죠.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난 지금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피부로 느껴질 만큼 굉장히 공감돼요. 특히 보육과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굉장히 커요. 당장 내 아이 일이라 생각해보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해지거든요. 사명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래서 전보다 더 진심으로 일하고, 그만큼 느끼는 보람도 큽니다. 아이키움을 아이도 행복하지만, 아이를 센터에 보내 놓고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모두가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9개월 된 아이의 엄마로서 박연정 대표는 한솔아이키움의 완전 돌봄 서비스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
박연정 대표는 당분간 더 바빠질 예정이다. 시범 사업으로 운영했던 마곡센터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김포한강센터를 시작으로 신반포, 반월, 동탄 등에 연이어 입점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확장된 보육 사업 모델을 만들기 위한 시도도 꾸준히 지속할 계획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마음에 새기는 말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조급해하지 말자’예요.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듣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왜 우리 애는 잠을 못 잘까?’ ‘왜 이유식을 많이 안 먹지?’ 등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들이 있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정말 영영 풀지 못할 숙제처럼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있잖아요. 그런 걸로 아이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해요. 또 하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입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다 제각각이듯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이 어떤 엄마인지, 또 나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 판단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요. 제가 지금 일을 안 한다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다각적으로 고민할 기회는 없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일을 하면서 저의 가치관도 더 다듬을 수 있게 됐고, 몰입해서 성취하고 싶은 인생의 목표도 생겼으니까요.”
육아야말로 행복과 가치가 최우선이 돼야 하는 일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희생과 현실만 얘기해왔던 것은 아닐까. ‘행복한 엄마’ 박연정 대표의 앞으로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Freelance Editor_ Kim Eun Hyang
Photos_ Park Hae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