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Journey Into The Museum

미술관이 여가의 중심이자 생활의 일부인 모녀가 있다.
올해 열한 살인 리나와 엄마 강은정 씨의 낭만이 가득했던 지난여름 발자취를 좇았다.

강은정 씨의 딸 리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토피피부염을 앓아 무척 예민했다. 사람이 많은 문화센터나 놀이 프로그램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리나를 위해 조용한 장소를 찾다가 결국 두사람이 향한 곳이 미술관이다.

결혼 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했던 은정 씨에게 미술관은 집처럼 안락한 공간이었고, 다행히 갓 돌이 된 리나도 이곳을 편안해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올해 열한 살이 된 리나는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미술관을 즐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다녀서인지 그림을 보는 데 은정 씨보다도 더 열성적이다.

“그림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즐긴다’는 표현이 더어울릴 것 같아요. 한번은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한참 서있더니 ‘엄마, 시간이 충분하다면 보고 그리기를 반복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모녀에게 미술관은 여가의 중심이자 생활의 일부다. 그러다 보니 가족 여행의 목적지는 늘 미술관을 기준으로 정한다. 지난여름 처음으로 긴 여행을 떠날 기회가 생겼고 ‘어느 나라의 미술관을 둘러볼 것인가’ 고민한 끝에 내린 답은 바로 미국이었다.

“리나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데 시간이 더 지나면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남편이 제 뜻에 흔쾌히 따라주었고 여행 동선을 짜는 것부터 비행기와 숙박시설 예약까지 옆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어요.

함께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미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데다 오하이오주 북부에 있는 도시 클리블랜드에 친구가 살고 있어 늘 가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구겐하임미술관이 있기도 했고요.”

그렇게 두 모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6월 마지막 주부터 광복절까지 총 7주, 장장 49박 50일간의 미국 여행을 떠났다.

레고 블록으로 조립할 만큼 자유의 여신상을 좋아하는 리나. 브루클린교 근처에서 크루즈를 탔더니 30m 앞까지 다가가 감상할 수 있었다.

솔로몬 구겐하임이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기반으로 설립된 구겐하임미술관 입구 .

모녀의 낭만적인 미술관 투어

둘만의 여행은 처음인 터라 걱정이 많았지만 우려와 달리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시카고를 시작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퀘벡, 나이아가라, 워싱턴DC, 피츠버그, 보스턴, 그리고 뉴욕까지 총 8개 도시를 방문했는데, 미술관 외에도 아트갤러리와 박물관, 도시 곳곳에 자리한 건축물을 감상하느라 바빴다.

“여행의 시작점을 시카고로 정한 이유는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불리는 시카고미술관, 보스턴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였어요. 또 시카고의 다운타운 곳곳에 있는 공공미술 작품이나 아키텍처를 보고 싶기도 했고요. 리나가 장 뒤뷔페의 공공미술을 보고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보았던 뒤뷔페의 작품을 떠올리는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몰라요.”

어릴 때부터 여러 미술관에 다니며 수많은 작품을 접한 리나는 그림에 대한 식견이 매우 풍부하다. 작품을 보자마자 “엄마, 바스키아야!”라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고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틈바구니를 이리저리 누비며 보고 싶은 그림을 찾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여행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반복되는 일정에 지칠 만도 한데 그림을 감상할 때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집중력도 뛰어난 편이라 한 점도 허투루 보거나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에요. 대학생 시절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방문하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리나도 무척 좋아했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바스키아 특별전이 열렸거든요. 통로를 따라 뱅글뱅글 돌아가며 작품을 차례대로 오랜 시간 동안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상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요.”

퀘벡의 한 미술관에서는 곳곳에 비밀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 공간이 있어 감탄사를 연발하며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고, 뉴욕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도시인 비콘에 있는 디아비콘(Dia:Beacon)에서는 작품에 푹 빠진 리나가 한참 동안 스케치에 열중하기도 했다.

공공미술의 천국이라 불리는 시카고. 도심 곳곳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수 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퀘벡의 에이브러햄평원.

때로는 한 템포 쉬어 가는 자유 여행

미술관 투어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가 원하는 곳위주로 자유 여행을 했다. 뉴욕에서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싶어 하는 리나를 위해 크루즈를 탔고, 보스턴에서는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덕투어(Duck Tour)를 즐겼다.

덕투어는 가장 편하게, 또 특별하게 보스턴을 둘러보는 방법중 하나로 약 80분간 오리 모양 수륙양용차를 타고 도시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게 장점. 도심 속 유명 지역부터 강에서 바라보는 시티뷰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고, 인근 푸르덴셜 빌딩에 쇼핑몰과 보스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데크가 있어 같은 날 둘러보기도 좋다.

퀘벡에서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그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만끽했는데, 마치 유럽을 연상시키는 거리 풍경과 언덕 위를 비추는 저녁노을을 느긋하게 즐겼다.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다.

“리나와 저는 구글맵으로 15~20분 안팎의 거리는 주로 걸어 다녀요. 걸으면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그 나라의 문화나 사람들의 일상 등이 더 잘 와닿거든요.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 여행지에서는 더없이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리나가 저보다 잘걷고 체력이 좋아서 가능한 거겠지만요.”

워싱턴 국립미술관 루프톱에 전시되어 있는 <Hahn/Cock, 2013>.

리나는 미술관에 가면 한 점의 그림도 빠트리는 일 없이 꼼꼼히 집중해 관람한다.

클리블랜드에서의 특별한 한 달 살기

50일간 여행하는 동안 리나는 여러 방면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는데 첫 번째는 단연 영어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 영어에 익숙한 편이었음에도 처음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현지인의 말을 반밖에 알아듣지 못했다는 리나.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영어 실력이 향상된 건 클리블랜드에 사는 친구네서 ‘한 달 살기’를 한 덕분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친했던 사이라 그 친구네서 한 달간 묵었는데 친구 딸이 리나 또래예요. 아무래도 동네의 또래 아이들끼리 매일 어울리다 보니 귀가 트였는지 영어가 많이 늘었어요.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뉴욕에서는 미술관 도슨트 할머니가 설명해주는 걸 전부 알아듣고 저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 가면 단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모습에 뿌듯했어요.”

무엇보다 은정 씨가 만족스러운 점은 리나의 사회성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클리블랜드에서 한 달 살기 덕분.

미국은 여름방학이 길어서 학생들이 각종 캠프에 참여하는데, 클리블랜드 친구가 리나도 보내보라며 캠프를 권유했다. 동양인이 없는 곳에서 현지인과 부딪히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리나가 낯선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어릴 때부터 리나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제 뒤로 숨곤 했어요. 그래서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니 친구가 하룻밤 자고 오는 숙박 캠프 대신 리나의 성향과 성격 등을 고려해 숲에서 놀다 오는 당일치기 프로그램을 추천하더라고요. 반신반의하며 가봤는데 아이가 제 생각보다 훨씬 용감한 거예요. 친구도 금방 사귀고 신나게 숲에서 뛰놀더라고요.”

한 달 살기를 하며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 통에 숲캠프는 일주일밖에 참여하지 못했는데도 리나는 친구들, 선생님과 헤어지는 마지막 날 떠나기 싫다며 한없이 슬퍼했을 정도다.

워싱턴DC에 있는 허시혼 박물관과 조각공원.
사진 속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 Yellow Pumpkin>이다.

클리블랜드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모녀.

리나는 미국의 낙서화가인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좋아한다.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리나.

모녀는 뉴욕에서 크루즈를 타기 위해 Pier15를 찾았다 .

완벽한 트래블메이트

아이랑 떠난 여행에서는 숙소와 음식 뭐 하나도 섣불리 결정할수 없었다. 리나는 아토피피부염과 비염이 있어 요금이 조금 비싸더라도 위생이 깔끔한 호텔에 묵었다. 

대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일찍 예약하거나 각종 프로모션을 수시로 살폈다. 아침은 호텔 조식 또는 근처 베이커리나 피자집에서 해결하고, 점심이나 저녁 중 한 끼는 목적지 주변 한식당이나 일식, 중식으로 꼭 밥을 챙겨 먹였다.

은정 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등 취향을 반영해 구체적인 여행 동선을 계획하되 아이의 컨디션 또한 세심히 살피라고 조언한다.

리나가 미술관을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지치지 않고 에너지가 넘쳐 계획한 여행이지만 만약 아이가 미술에 관심이 없었다면 다른 일정의 여행을 계획했을 것이다.

“리나는 참 잘 걸어요. 기분이 좋으면 통통통통 뛰어다니죠. 여행하는 내내 대체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는 시차 적응이 안 되어 그런지 오후 4시만 되면 졸려 했어요. 

그러면 저는 오후 일정을 접고 호텔로 돌아와 낮잠을 재웠죠. 안 그러면 다음 일정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또 아이가 피곤하지 않도록 시카고에서만큼은 우버를 애용했어요.”

그런 면에서 은정 씨와 리나는 서로에게 훌륭한 트래블메이트가 되어주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데서 오는 행복감에 더해 리나의 폭넓은 성장까지 선사해준 이번 여행이 더욱 특별한 이유다. 아이랑 같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얻은 걸 말하자면 3박 4일을 꼬박 새워도 부족하다는 은정 씨. 모녀의 미술관 투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ditor : Kim Do Dam (Freelancer )
Photos : Kang Eun Jeong (@ mm _ li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