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ccidental Guide to Fatherhood

불량 아빠의 육아 일기.

TV 프로그램에 명사들이 가족과 함께 나와 자신의 가정 생활을 재미있게 말하는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낯설지 않다. 그리고 “남편으로서 몇 점입니까?”란 질문과 “(머쓱해하며) 겨우 50점 넘었어요” 하는 식의 문답도 매우 익숙하다. 소위 사회에서는 백점, 가정에서는 빵점으로 평가되는 대한민국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또 한 명의 명사를 추가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졸업 후 영국 런던 경제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투자 은행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일했으며, 저널리스트로서 <이코노미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글을 쓴 세계적 경제 브레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월스트리트 최고 두뇌들의 머니 게임을 그려낸 <라이어스 포커>와 새로운 경영 기법을 제시한 <머니 볼>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 그는 개인적으로도 으뜸으로 꼽는 대단한 통찰과 지성을 겸비한 인물 중 하나다. 그런 그가 2009년 육아책을 썼다. 제목은 <불량아빠 육아 일기(Home Game)>.

먼저 <뉴욕타임스>의 서평을 보자.

“이 책 속의 아빠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면서도 이내 자신의 죄를 시인한다. 대부분의 아빠들처럼….”
그렇다. 말콤 글래드웰이 천재적 글쓰기의 대표적 인물로 칭송한 그였지만 마이클 루이스 역시 육아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그저 한낱 범인(凡人)에 불과했던 것이다. 책은 ‘양육 일기’라기보다는 육아에 능숙해지는 한 편의 ‘아빠 성장 분투기’가 맞을 듯하다. 그에게는 첫딸 퀸, 둘째 딸 딕시, 막내 아들 워커가 있는데 이들을 양육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의 경험을 작가 특유의 글 솜씨를 부려 맛깔스럽고 유쾌한 감동과 공감을 그려냈다. 그것도 아주 솔직하게 말이다. 책 속에 한 가지 재미있는 문장을 소개해본다.
“부모의 언어는 암호로 되어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어’라고 말하면 실제로는 ‘우리 모두’ 병원에 갈 거야. 단 한마디 불평이라도 한다면 사랑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엄마의 걱정은 대적할 수 없는 자연의 힘 가운데 하나다. ”
육아 중이거나 육아 경험이 있는 아빠라면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나 역시 ‘대적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이제는 인정하나, 한때 멋모르고 덤볐다가(아니 꼼수를 부렸다가) 큰코다친 적이 있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아내는 내 생각을 지배하는, 360도 공중 회전 CCTV 카메라, 즉 ‘eye in the sky’란 것을. 그리고 작가는 세 가지의 매우 중요한 규칙을 선언한다. 이 책 원제의 부제는 ‘부성애자들에게 필요한 돌발적 가이드’다.

첫째, 뭐가 문제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문제는 바로 나라는 것을 명심하라.

둘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는데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바로 나 때문이란 것을 명심하라.

셋째, 아빠가 되어서 성가시거나 불안하거나 생활이 엉망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뭔가를 잘못하고 있어서 아이들의 인생이 엉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문과생이 이과생 나라에서 적응하기 위해선 ‘은유’보다는 ‘직설’을, ‘이상’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듯이 ‘나’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던, 자의식 강한 남성들이 육아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뛰어난 공감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는 존 그레이의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공감대 형성을 강조한 것과 유사하다. 공감과 관심을 원하는 관계지향형 여성과 성취욕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남성을 매개하는 정서의 어울림은 아빠와 자식 간에도 유효하다는 뜻이다.
세 번째의 경우는 육아에 있어 일정 부분 감당해야 하는 물리적, 심리적 불편함을 말한다. 와이프 부재 시 태블릿 PC를 아이에게 건네주고 유튜브 시청을 장시간 허락한 적이 있다. 그럼으로써 나만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집, 학교, 교재 심지어 같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도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방임의 대가를 치르고 있구나!’ 이후에도 아이의 유튜브 시청은 멈추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이후 옆에서 같이 시청하면서 부적절한 콘텐츠를 필터링해주는 아빠로서 역할하고 있다.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받으면서 시청 중이라 이제는 안전하다.
육아에서는 도저히 구제 불능일 것 같은 절망감을 느끼는 아빠들이라면 마이클 루이스의 공감 가는 이야기로 변화의 계기를 얻길 권한다. 사람들의 행동 변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익숙해진 습관을 쉽게 깨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모든 습관과 행위는 ‘마인드’에 달려 있다. 왜 마인드 리셋을 해야 하는지가 절실하게 와닿으면 바뀔 수 있다. 작은 노력을 통해 유익한 육아 재기의 기회를 갖는다면 좋고, 남편의 육아에 늘 불만족스러운 엄마들도 ‘아, 남편들도 이런 속사정과 노력이 있었구나’를 공감하면 금상첨화다. 육아는 끊임없는 배움과 깨달음이다.
Writer & Illustration_ Kim G.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