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Here Please!

색으로 채운 하얗고 네모반듯한 집.
그곳에서 뉴프레스 우해미 대표와 남편, 아들이 함께하는 충분한 하루. 

함께하는 대부분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는 지형이와 우해미 대표. 정원의 아웃도어 체어는 론체어 USA lawn chair USA 제품. 팝한 컬러감의 제비 일러스트가 그려진 정육면체 스툴은 판지 스튜디오. 오른쪽 흔들의자는 비트라.

우해미(39세) 대표는 바지런한 사람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사람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심지어는 디자이너로서 아이 옷까지 만든다.

그가 7년여의 기자 생활을 내려놓은 건 4년 전 어느 날의 일이다. 주말까지 밤낮 없이 일하며 가정에 소홀해질 자신의 미래가 시간이 지날수록 빤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2015년 고민 끝에 다양한 종류의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기획하는 미디어 회사 뉴프레스를 차렸다. 가정과 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것,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오래! 그가 새로운 일을 고민하며 세운 기준이었다.

지금은 서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매거진 <포스트서울 post seoul>을 발행하고, 제로투파이브라는 아동복 브랜드를 운영하며, 때때로 디스코 키즈라는 팝업 형식의 아동복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를 바삐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다름 아닌 가족이다. 뉴프레스를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적처럼 아들 지형(4세)이가 왔다. 

아이 욕심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지금 우해미 대표에게 지형이는 함께 있으면 그 누구보다 재미있는 최고의 친구이자 소울메이트다.

정원에도 지형이를 위한 놀잇감이 한가득이다. 오른쪽 목마는 뉴욕에 살던 친구가 선물로 사온 것.

온 가족이 함께 자라나는 우리 집

이사를 결심한 건 남편 민재열(41세) 씨가 판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다. 출퇴근만 네 시간이 넘게 걸려 결혼 후 쭉 살아온 영등포구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판교와 분당 근방에서 새로운 집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내 포기해야 했다. 반짝이는 건물들이 구역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신도시에서 동네의 정취를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부가 생각하는 동네란 그 동네와 함께 성장한 커다란 나무가 있고, 선선한 밤이면 오래된 공원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부부는 ‘진짜 동네’를 찾고 싶었다.

지형이가 한 동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집 가까이 있는지도 중요하게 살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잠실의 32평 빌라다.

위치와 크기, 환경까지 원하던 조건이 모두 충족된 곳. 게다가 거실 창을 열면 풀이 우거진 테라스 정원이 바로 펼쳐지는 1층 집이었다.

하얀 무광 타일로 깔끔하게 다진 바탕에 선명한 초록색 수납장을 더한 주방.

2002년에 입주한 첫 주인이 한 번도 고치지 않고 17년을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집이라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부부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판지스튜디오의 양재윤·강금이 디자이너에게 시공을 부탁했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기에 기본 골조는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오래된 벽지와 타일, 장판만 새것으로 교체했다.

부부의 목표는 ‘인상적이지 않은 바탕’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재도 최대한 깨끗하고 담백한 것으로 선택하고, 조명 또한 전부 안쪽으로 숨겨 시야를 방해하지 않게끔 했다. 그렇게 하얀색으로 완성한 바탕에 가구와 소품으로 색을 더했다.

“태생이 장식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물건을 참 좋아했어요. 기자 생활을 하며 매일 더 좋고 새로운 물건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눈도 높아졌고요.

그런데 막상 우리 집을 채우려니 무엇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몰라 어렵더라고요. 어설프게 흉내 낸 가구를 집에 들이기도 싫었고요. 결국 남편과의 대화 끝에 마음을 정리했어요. 우리가 가진 예산 안에서 행복하게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고요.”

부부의 집에 들어서면 자잘한 물건이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하루에도몇 번씩 사용하는 물건과 소파나 테이블처럼 부피가 큰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물건은 전부 붙박이장에 수납해두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어나는 물건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을 무렵 대부분을 처분해버린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이다 보니 이런저런 물건을 꺼내두는 것이 위험할까 걱정스러워서다.

주방 맞은편은 정유진 작가의 패브릭과 러시아산 빈티지 조명으로 간결하게 꾸몄다.

대리석 테이블과 오래된 나무 의자, 아크릴 체어가 조화를 이룬 가족의 식탁.

집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벽면은 우해미 대표가 차곡차곡 모아온 CD로 가득하다. 위에 걸린 그림은 정유진 작가의 작품.

우해미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전산의 선반.
선과 면, 색깔만으로 다양한 표정을 짓는 매력적인 가구다.

“저 혼자만의 공간을 꾸몄다면 절대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8평이 조금 안 되는 방을 온전한 제 공간으로 꾸미는 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거든요. 틈만 나면 빨갛고 노랗게 벽을 칠하고, 예쁘지만 쓸모없는 물건을 잔뜩 사들이며 스트레스를 풀었으니까요.”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맥시멀리스트였던 그는 취향이 전혀 다른 남편과 어린 지형이가 함께 살아갈 집을 고민하며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가족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집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한것이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대표하는 빌헬름 바겐펠트 Wilhelm Wagenfeld의 조그만 램프와 전산의 수납함이 전부인 부부의 침실.

엄마를 닮아 일찍이 색에 눈을 뜬 지형이의 방은 갖가지 컬러로 가득하다.

아이를 키우는 건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

재택근무를 하는 우해미 대표는 지형이가 하원하는 오후 4시부터는 최대한 업무를 중단하려 한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저녁이 가족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집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한것이다.

하원 길에 작지만 알찬 놀이터가 있는 집 앞 공원에 들르는 것, 저녁 식사 후 타원형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블록을 쌓는 것, 해가 좋은 날 정원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 특별하지 않은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가족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최근 우 대표는 심리 상담을 받았다. 마흔을 앞둔 지금,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저는 지형이가 하고 싶은 게 뚜렷한 아이가 되었으면 해요. 단단하게 자라서 자기 밥그릇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부모부터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같더라고요. 저를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한걸음 물러나 보다 성숙한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자신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단단한 엄마를 따라 지형이의 하루도 어제보다 오늘 더 올곧고 단단해질 것이다.

아이 방 중간, 뜬금없는 곳에 세워져 있던 가벽 뒤로 지형이의 장난감을 깔끔하게 숨겨두었다.

형이는 요즘 보드게임에 빠져 매일 우해미 대표를 조른다. 서프보드를 닮은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은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엘립티컬 테이블 elliptical table.

Editor : Sung Ha Young
Photos : Kim Tae 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