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Nothing Travel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나도 괜찮다.
코하네 가족처럼,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 모든 순간이 특별해진다.

회사원 최현진 씨와 플로리스트 박희정 씨, 올해로 여섯 살이 된 코하까지, 세 가족은 지난여름 한 달간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코하는 딸 리아의 태명. 남편이 한 달의 안식휴가를 받으며 장기간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됐다. 여행지를 정하기에 앞서 여행을 가면 뭘 하고 싶은지, 어떤 곳에 가고 싶은지 온 가족이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하는 바다, 현진 씨는 따뜻한 날씨, 희정 씨는 저렴한 물가를 꼽았다.

가까운 동남아를 제외하고 호주, 하와이, 유럽 중에서 고민하다 세가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곳인 유럽의 포르투갈로 마침내 여행지를 정했다. 아이 데리고 종종 해외에 나간 적은 있지만 장기 여행은 처음이었던 부부.

장시간 비행을 견뎌야 하는데다 8시간 시차가 있어 출발 전 걱정이 많았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코하가 집에 가자고 떼를 쓰면 어쩌나 싶어 색칠공부책과 스티커북을 챙기고, 아이가 놀기 좋은 해변과 놀이터를 검색해 구글맵에 일일이 저장했다.

“타지에서 병이라도 날까 봐 소아청소년과에서 처방전을 받아세 식구의 상비약을 준비했는데 이것만 한 보따리가 됐어요. 또 장거리 비행이 처음이라 어린이용 헤드폰, 코하가 좋아하는 간식, 색칠공부책, 색연필도 챙겼고요. 다행히 코하는 잘 먹고 잘 잤지만요.”

그렇게 걱정을 한가득 안은 채 세 가족의 장장 35박 36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포르투갈 도착 셋째 날, 세 가족 중 가장 빨리 적응을 끝내고 현지인(!)이 된 코하는 시내를 이리저리 바삐 누볐다.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코하네의 여행 테마는 조금 평범했다. 누군가 “포르투갈에 가서 뭐 할 거야?”라고 물으면 “아무것도 안 할 거야”라고 대답했다.

이번 여행은 기간이 넉넉하기도 했거니와 알찬 여행을 위해 세우는 계획이 코하와의 여행에선 오히려 방해가 됐기 때문. 일정에 따라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면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게 스트레스가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하고 싶은 것이 뭐든 하루에 하나씩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모두가 무사히 다녀오는 게목표였다고 할까요. 사실 포르투갈은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라 도루 강가나 공원에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숙소를 고를 때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강, 공원, 바다가 가까운 곳으로 선택했답니다.”

포르투에서 2주, 나자레에서 3박 4일, 리스본에서 열흘, 알부페이라에서 5박 6일, 또다시 리스본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이들의 일정은 그날의 날씨나 가족의 컨디션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포르투갈의 화창한 날씨와 멋진 풍경 덕분에 매일 주말같은 일상을 지내다 온 세 사람.
햇살이 따스한 날엔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에 나가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하루씩 번갈아 하고 싶은 걸 정했는데 그러다 보니 코하 차례가 되면 온종일 물놀이를 하거나 숙소에만 있어야 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그래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나씩 얘기하고 세 가지를 하루 동안에 다 하기로 타협했죠.

가령 ‘엄마는 시내에 나가고 싶어’, ‘아빠는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고 싶어’, ‘코하는 수영을 할래’라고 하면 시내를 둘러본후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수영을 하는 식으로요.”

정해진 계획 없이 움직이다 보니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특별한 추억을 쌓기도 했다. 리스본에 머물 때 숙소 앞 공원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아웃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걸 알게 돼 코하와 함께 돗자리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음악이 들리자 코하가 페스티벌을 찾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코하의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그다음 주에도 페스티벌을 찾았고 그때의 추억은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남았다.

리스본 근교 카스카이스에 있는 하이냐 해변(Praia da Rainha). 고운 모래와 얕은 수심, 약한 파도까지 물놀이를 좋아하는 코하가 놀기에 더없이 좋았다. 해변 근처에 회전 목마가 있는데,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코하는 금방 단골손님이 됐다.

느즈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은 뒤 코하랑 천천히 도루 강변을 걷노라면 부부의 마음 속에 행복감이 그득 차올랐다.

가족 모두를 감동시킨 포르투갈

장기 여행이다 보니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세 가족의 숙소를 해결해야 했다. 코하네는 휴양지인 알부페이라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포르투갈은 마트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 직접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비용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호스트가 제공하는 로컬 정보도 코하네가 에어비앤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 숙소 인근의 가볼 만한 곳이나 맛집을 소개해주는데 실패할 확률이 적다.

동네 주민들이 퇴근 후 들러 저녁식사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는 식당이라든가 단돈 0.6유로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카페 등 검색만으로 찾아낼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

아이를 환대하는 업소의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코하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작은 장난감이나 풍선, 색칠공부책, 그림책등 다양한 놀잇감을 주고, 피자 가게에서는 피자를 굽는 동안 가지고 놀라며 아이에게 빵 반죽을 한 움큼 떼어주기도 했다. 포르투갈 여행이 그 어디보다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이기도 하다.

리스본 근교 카스카이스에 있는 하이냐 해변(Praia da Rainha). 고운 모래와 얕은 수심, 약한 파도까지 물놀이를 좋아하는 코하가 놀기에 더없이 좋았다. 해변 근처에 회전 목마가 있는데,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코하는 금방 단골손님이 됐다.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준 포르투갈.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여행

이번 여행에서 코하는 짧은 시간 크게 자랐다. 트램에 올라 도시를 누비고 거리에서 포르투갈 전통놀이를 체험하며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와 언어,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때로는 아이답지 않은 발언으로 부부에게 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여행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남편이 ‘여행이 끝나가서 우울해’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코하가 아빠를 보며 ‘하지만 사는 게 끝난 건 아니잖아’라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어느새 엄마 아빠를 위로할 만큼 자랐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어요.”

욕심을 내려놓고 즐긴 한 달 살기는 세 식구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한 달간 붙어 지내다 보니 서로를 더 잘 알게 됐고, 포르투갈에서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늘 어려워요. 도루 강변을 거닐다 갑자기 화장실을 찾아 서둘러 택시 타고 숙소로 돌아온 적도 있고, 일몰을 보려고 나갔는데 바로 잠들어버려 아이를 안은채 발길을 돌린 적도 있고요. 그래도 모두 좋은 기억이에요.
무엇보다 코하가 행복해했고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저희 부부도 더 행복해졌거든요.”

Editor : Kim Do Dam (Freelancer )
Photos : Park Hee Jeong (@ heejeongpar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