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ional Trip

저학년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미술 교육이다. 방콕, 뉴욕, 하와이 한 달 살기 붐으로 시작해 일본, 유럽 역사 기행 등으로 이어지는 학습 투어 열풍의 숨은 그림 찾기.

해외 한 달 살기 신드롬

“하와이는 천국이잖아. 아빠만 없다면 말야.”

“캐나다도 아니고 뉴질랜드는 좀 아니지 않아?”

“겨울에 뉴욕에서 한 달 정도 있다 오면 어떨까. 애들이랑 공연도 잔뜩 보고.”

산후조리원 모임에만 다녀오면 준오 엄마, 수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가의 산후조리원에서 만나 인연이 된 후, 한 동네에 모여 사는 같은 나이의 자녀를 키우는 4명의 맘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정도로 서로 돈독했다. 당연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누가 먼저 걷나’, ‘누가 먼저 말을 줄줄 하는가’ 등의 발달 상태가 관심사였다면 아이들이 클수록 교육 정보가 단연 이슈였다.
그렇다 보니 한 명이 세계명작동화를 구입했다고 말하면 다른 4명도 자연스럽게 따라 샀다. 특히 혜인 엄마의 경우, 아이가 대치동에서도 들어가기 어렵다는 영어 학원과 수학 학원의 톱 클래스에 있기 때문에 모임에서의 영향력도 대단했다. 아이의 실력을 입증하듯 혜인 엄마는 실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혜인 엄마가 추천하는 문제집은 반드시 사야 했고, 방학 중 진행하는 체험 학습도 함께 다녔다. 혜인 엄마의 주도와 추천으로 이뤄지는 것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이뤄졌던 소소한 추천은 수인에게 부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쏠쏠한 정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갈수록 교육비의 규모가 커지자 슬슬 부담되기 시작했다. 수인은 늘 산후조리원 모임에서 자신이 가난한 축에 든다고 생각했다. 강남에 있는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데다, 매달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일명 ‘개룡남(개천에서 용난 남자)’인 남편은 장남도 아니면서 시가의 대소사에 가장 많은 몫의 돈을 내놓았다. 수인의 시어머니 또한 강남 한복판에 집도 있으면서 앓는 소리 그만하라는 식이었다.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매달 들어가는 살림살이의 규모는 빤하고 아이들 교육비는 줄일 수 없고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산후조리원 모임에서 나오는 정보의 수준이 벅차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멤버들 모두가 재작년부터 여름방학마다 ‘한 달 살기’를 시작한 때부터라는 것이 맞겠다. 산후조리원 동기맘들은 처음에는 하와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더니 뉴욕에서, 퀘백에서 거처를 옮겨가며 방학 때마다 해외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엔 수인을 제외한 산후조리원 멤버들이 다 함께 같은 도시에서 한 달씩 살다 오곤 했다.
워킹맘이면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수인만 이 대열에 참가할 수 없었다. 물론 수인도 1년에 한 번은 해외로 가족 여행을 가곤 했지만, 한 달 살기는 그 지출의 사이즈가 달랐다. 어쨌거나 수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몫인 건 확실했다. 그들이 방학 때마다 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에게 잠시라도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 그리고 대치동 학원을 벗어나 한 달 만이라도 원 없이 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수인은 알고 있었다. 다 함께 아이들을 종일반 영어 캠프에 보낸다는 것을. 영어로 또래 아이들과 액티비티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실은 주요한 목적이었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캠프를 다녀오자마자 예약했던 영어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봤다. 매번 인터뷰에서 고배를 마셨던 아이도 한 달 살기 이후에는 가뿐하게 영어 학원에 입학하기도 했다. 어쨌든 대치동 영어 학원의 입학 당락을 쥐고 있는 것은 시험 성적보다는 ‘유창한 스피킹’이었기 때문이다. 영어 유치원을 보내지 않은 멤버들도 매해 방학마다 한 달 살기를 통해 2~3년치 영어 유치원 원비에 해당하는 돈을 쓴 셈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아이들도 4학년쯤 되자 웬만한 영어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 수준에 버금가게 되었다.
주변 상황이 이쯤 되자 수인은 이 모든 실력의 차이가 영어권 국가에서의 한 달 살기 덕분이라고 판단했다. 똑같이 일반 유치원을 나오고 영어 학원을 보낸 수인의 아들은 여전히 유명 어학원으로의 입성은 꿈도 못 꾸는 스피킹 실력이라는 것이 이를 방증하는 셈이었다.
이번 여름방학은 유럽에서 보내자고 먼저 말을 꺼낸 이는 혜인 엄마였다. 영어권 나라 한 달 살기를 넘어 혜인은 다니고 있는 역사 학원에서 이미 일본 여행을 다녀온 터였다. 한국사를 1년 동안 수강하고, 파이널에는 일본이나 중국으로 역사 학습 투어를 다녀오는 것이 이 학원의 특징이었다. 물론 한국사를 수강한다고 해서 모두 다 이 해외 체험 학습 투어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테스트를 통해 분반을 하고, 이 분반 테스트에서 상위 레벨이 되어야만 역사 전문 선생님의 친절한 가이드를 받으며 해외 학습 투어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한국사를 수강하고 나면, 세계사로 이어지는 이 학원의 커리큘럼은 대단히 인기 있었다. 학습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는 대치동이지만, 오히려 전통적인 성공 루트와 명성이 있는 오래된 학원이 많은 곳 또한 대치동이다. 전통을 자랑하는 이 학원 역시 입학 대기만도 엄청나게 오래 걸리기 때문에 초등 1학년에 대기해 놓으면 초등 3학년에나 겨우 연락이 올 정도였다.
혜인 엄마는 수학 선행 학습으로 바쁜 혜인이가 매주 시간을 내서 세계사를 수강할 수 없는 때가 도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리프레시도 할 겸 세계사 투어를 위해 유럽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미 세계사 투어와 미술관 투어를 함께 진행할 가이드도 다 물색해놓은 상태였다. 당연히 다른 멤버들도 스케줄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수학 진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멤버 중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엄마가 수학 선행을 돕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뿐인가.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열어 항공권을 검색했다. 항공권 검색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어비앤비 물색까지 일사천리였다. 이 모든 상황을 결정하고 알아보는 데까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인은 점점 오늘의 이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준오 엄마는 이번에도 안 갈 거야?”
“에이, 준오 엄마야, 준오 학원 스케줄이 얼마나 중요해. 우리야 노는 것이 더 좋은 사람들이고.”
속도 모르고 얄밉게 말하는 멤버들이 야속해진 수인이었다. 학원 스케줄이 대수인가. 어차피 여름방학은 짧아서 크게 진도가 빠지는 일정이 아니었다. 수인도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꼭 따라 가야지 했는데, 유럽이라니. 하와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준오 아빠는 한 달 동안 애들하고 떨어져 있는 걸 상상도 못해. 나는 가기가 어렵겠어.”
“그러게. 준오 아빠처럼 다정한 아빠도 없지. 우리들은 애들 투어 보내고 쇼핑 좀 하자.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아?”
“쇼핑이 중요한 건 아니지. 기본적으로 루브르, 오르세, 오랑주리 미술관에 며칠씩 가야지.”
“소소하게 작은 미술관들을 돌고. 아이들이 미학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접근한다는 건 근사한 일이잖아. 세계의 명화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훑어보는 거지.”
“파리는 시작이고, 영국으로 옮겨서 공연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문학 기행도 좀 해야지. 이런 건 다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꽤 쓸모 있는 것 알지?”
혜인 엄마의 일갈에 모두가 강한 확신의 눈빛을 보냈다. 유럽 한 달 살기에 가지도 않는 수인을 앞에 두고, 혜인 엄마는 막힘 없이 계획을 세워 나갔고, 멤버들은 이견 없이 빠르게 동의했다. 혜인 엄마의 계획은 수인이 생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이제 내년이면 고학년이 될 아이들이지 않은가. 시간은 점점 부족해질 테고 지금 가지 않으면 유럽에 갈 기회가 영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이들이 어려서 과연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으려나….”
수인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을 보태자, 혜인 엄마는 검색을 멈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고학년 때 유럽에 가는 건 옛날 말 아닌가? 5~6학년 때 우리 애들 너무 바쁠 텐데…. 그리고 뭐 100% 알기 바라고 가는 건 아니지. 수학 선행하고 똑같아. 50%만 남긴다 생각하고 가는 거지.”
혜인 엄마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이 고개를 ‘원헌드레~드’ 퍼센트 동의한다는 듯 끊임없이 끄덕였다. 수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쓸데없는 말이나 보탰구나’ 무안해졌다. 어쩔 수 없이 이번 브런치 모임은 유럽 체험 학습 투어의 준비 모임이 되었고, 수인은 멤버들의 기대와 흥을 지켜보며 리액션만 하다가 에너지가 바닥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갔다. 아직 간식 준비도 못했는데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수인은 안방도 아닌 거실에 시체처럼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홱’ 일으켜 은행 앱을 열어 마이너스 통장의 잔액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단체 톡방에 메시지를 띄웠다.
“나도 이번에 같이 가. 준오 아빠가 허락했어!”
수인의 비장한 카톡 메시지 옆에 1은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오늘 일찍 와. 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
멤버들은 드디어 완전체가 출격한다며 환호했다. 수인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한 달 살기, 힐링인가 학습 투어인가

한 달 살기 열풍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제주 한 달 살기가 괌으로, 하와이로 슬슬 번져 나갔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도시에 따라 목적은 사뭇 다르다. 제주 한 달 살기는 제주도라는 다소 선망의 공간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바다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물놀이를 하는 쉼표 같은 느낌이었다면 영어권 국가에서의 한 달 살기는 다른 것이다. 서핑이나 액티비티가 목적이 아니다. 사립학교에서 진행하는 캠프나, 공공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사전 등록하는 것은 필수다. 캠프 등록 기간이 되면 강남 지역 맘카페에 슬슬 정보가 올라오고, 엄마들은 캠프에 우선 등록 후 나머지 준비를 시작한다. 그러나 주변에는 공부 안 시키고, 신나게 놀게 해주는 엄마, 공부에만 몰입되어 있지 않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엄마로 이미지 메이킹되길 원하는 축들도 상당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 살기에 어학 코스를 넣거나 하는 것을 부러 공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집중 학습 때문에 몇 달 동안 체류하는 어학 연수 열기는 식어버린 지 오래다. 이들에게는 여름방학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영어가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 역사 학습 투어에 나선다. 사회과 과목은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신경 써서 챙기지 않으면 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고궁, 다양한 역사적 장소에서 진행되는 체험 학습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으로 한국사를 수업하는 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등록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기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1년이 넘는 한국사 과정을 지나오면 18개월 과정의 세계사 과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세계사 과정이 마무리될 즈음 유럽 세계사 기행을 떠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한 달 살기’를 계획한다.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 등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미술, 음악 등 문화적 콘텐츠를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학년 때의 일이다. 고학년이 되면 수학 선행 학습 때문에 이런 일정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서 한 달 살기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것은 철저하게 계획되어야 하고, 목적이 분명하다. 트렌드처럼 번지는 ‘한 달 살기’의 여행과 힐링이라는 로망의 포장 이면에는 다양한 면에서의 학습 성취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열혈맘들의 묘수와 반전이 있는 것이다.
Writer & Photos_ Unskilled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