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ing up Kids with Earth

답답한 집 안과 교실, 복잡한 쇼핑센터를 맴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떠난 엄마와 아이들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

Slow and Full Life

스페인 고산지대에서 뛰노는 세 자매
작가 김산들, 샌드라(11세), 누리(8세), 새라(8세) 가족
‘아이란 어디에서든 창의적으로 무수한 놀이터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세 아이는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적응하며 자기들만의 놀이를 부지런히 만들어낸다.
스페인에서 가족과 함께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있는 김산들 작가. 최근 자신의 슬로 라이프를 담은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시공사)를 펴냈다. 김 작가는 20대 중반에 네팔을 여행하다가 스페인 사람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해발 1200m의 고산 마을 비스타베야(vistabella)에 정착했다. 삶의 속도를 느린 호흡에 맞춰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녀지만 비스타베야에서의 삶은 그전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했다. 비스타베야는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한 시간 정도 도로를 달리면 나타나는 산악지대다. 세찬 바람이 부는 들판과 건조한 고산기후, 전기와 수도조차 없는 오지의 삶을 결심하게 된 것은 멀리 지중해의 섬이 펼쳐진 아름다운(bella) 풍경(vista)과 고산 특유의 청명함 그리고 자연공원에서 자연교육사 겸 기술요원으로 일하는 남편 산톨 씨의 열정과 설득 덕분이었다.
부부는 쓰러져 가는 돌집을 구입해 5~6년에 걸쳐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함께 고쳐나갔다. 전기와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샘물과 빗물로 식수와 생활용수를 해결하고 전기는 태양광을 이용했다.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조금 불편해도 금세 몸에 익숙해졌다. 집이 완성될 즈음 첫째 샌드라가 그리고 다시 쌍둥이인 둘째 누리와 셋째 새라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이곳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들판과 넓은 초원에서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온종일 뛰어 논다. 고즈넉한 고산지대지만 아이들 덕분에 집은 언제나 소란하고 북적인다. 학교에 가지 않는 휴일엔 산책을 하거나 소풍을 간다. 가까이에서 매일 보는 숲이지만 이 가족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숲이다.
‘아이란 어디에서든 창의적으로 무수한 놀이터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김산들 작가의 생각처럼 세 아이는 변화하는 자연 안에서 적응하며 자기들만의 놀이를 부지런히 만들어낸다. 봄에는 자전거를 타고 들판으로 줄행랑 치고, 칼바람 이는 겨울에는 햇볕을 받으며 따듯한 산등성 바위에서 소꿉놀이를 한다. 또 숲 속에서 온종일 새소리를 들으며 보내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 텃밭에 가는 오후에는 개구리를 볼 요량으로 샘가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이 자연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의심한 적도 있지만 그녀는 숲 속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버섯을 소중하게 여기는 큰아이를 보며 ‘숲이 공생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세 자매는 학교에서 돌아와 산과 들로 다니며 새로 피어난 꽃과 풍성하게 잎을 더하는 나무의 변화를 보며 자연을 만끽한다. 엄마인 김산들 작가 역시 이러한 행복을 함께 누리고 있다. ‘존재감 없이 조용히 자라던 식물이 어느 날 자기만의 색깔로 세상을 대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런 때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Little Camper

남미와 제주의 산과 바다를 품은 엄마와 아들
키티버니포니 마케팅 디렉터 이홍안, 안단테(6세) 가족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비추는 즐거움에 밤을 기다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힘들어도 결국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로 끝나는 게 아이와의 여행이다.
디자인 패션 브랜드 키티버니포니의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이홍안 씨. 지난해 9년간 다니던 직장에 1년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한 뒤 아들 단테와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단테는 훌쩍 자랐고, 이홍안 씨 또한 잠시 휴지기를 가지며 숨 가쁘게 달려온 30대를 한번 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아들 단테와 함께 제주도로 한달살기를 떠났다. 제주도는 아이를 낳기 전 1년에 네 번 이상 방문했을 정도로 좋아하는 곳. 아이에게 산과 오름, 바다를 모두 경험토록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큰 결심을 하지 않고서도 오름과 바다를 슬렁슬렁 산책하듯 걸어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결혼 전 캠핑을 즐겨 다녔던 그녀는 아들 단테가 태어난 뒤에도 시간 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캠핑을 떠났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또 하나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바로 남미로 떠나기로 한 것. 당연히 이번에도 아들과 함께였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모자는 일주일쯤 스페인에 머문 다음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한 달을 보냈다. 칠레에서는 산티아고와 아타카마 사막에 갔고, 파타고니아 지방(토레스 델 파이네)을 지나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다. 거대한 사막에서, 우르르 무너지는 빙하 앞에서, 몸이 휘청거리는 파타고니아의 바람 앞에서 아들과 함께 선 이홍안 씨는 이전에 고민했던 문제들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아이와의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나 친구, 남편과 하는 여행과는 다르다. 사소한 의견 차이나 서로에 대한 기대로 다투는 일 없이 의외로 어린아이가 의지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거나 실수를 할 때 오히려 아이는 “엄마, 괜찮아. 내가 기다려줄 테니까 해봐”라고 말했다. 휴대폰을 찾으려고 허둥지둥 울상이 되는 순간에도 “엄마, 나는 안 잃어버렸으니까 괜찮지?”라고 말하는 아이에게서 받는 격려와 웃음은 두 사람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해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비추는 즐거움에 밤을 기다리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힘들어도 결국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로 끝나는 게 아이와의 여행이라는 게 이홍안 씨의 생각이다. 아이와 캠핑을 하고 여행한 시간은 그녀와 가족에게 다른 선택과 계획을 하게 만들었다. 최근 제주에 작은 방을 하나 구한 것이다. 단테가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남은 시간 동안 보름씩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지낼 예정이다. 홀린 듯 결정했지만 서울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만큼 제주에서는 최선을 다해 자연을 즐길 생각이다.

Weekend Farm

시골살이를 꿈꾸는 엄마와 키즈 파머
구름바이에이치 하연지 이사, 딸 지안(12세), 리안(6세) 가족
도시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이 주말농장에 다녀오는 것으로 크게 바뀌는 건 아니다. 그래도 주말마다 찾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위안과 보상이 되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다.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셀렉트숍 구름바이에이치의 하연지 이사는 자신에 대해 ‘도시를 벗어나 살아본 적은 없지만 시골살이를 꿈꾸는 엄마’라고 소개한다. 그녀의 SNS 계정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동의할 것이다. 이 ‘도시 여자’는 역시나 ‘뼛속까지 도시 남자’인 동갑내기 남편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둘째 리안은 아빠를 닮아 ‘도시의 공주’를 꿈꾸지만, 첫째 지안은 엄마의 뒤라도 이으려는 듯 자연에서 뛰노는 걸 즐긴다. 하연지 씨는 요즘 주말이면 도시를 떠나 초록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남양주의 주말농장. 작년에 친구를 따라간 것이 시작이었다. 한창 뛰어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주말마다 고민하던 차에 너른 야외에서 실컷 뛰놀 수 있는데다 직접 기른 쌈채소에 고기를 구워 먹는 재미까지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이름은 주말농장이지만 그녀와 아이들에겐 주말 놀이터였던 셈이다.
그런데 올해는 회원 수가 늘어나면서 크기가 좀 줄었다. 처음부터 ‘먹고 놀자’는 생각이었던 터라 농사에 욕심내지 않고 달랑 상추만 심었는데 이게 웬걸. 상추가 어찌나 잘 자라던지 이집 저집 나눠주기 바빴다. 어느새 채소 농사의 재미에 푹 빠진 그녀는 올해엔 상추에 더해 깻잎, 겨자, 애호박, 감자, 래디시, 루콜라, 고수, 샐러리 등 여러 가지를 모종으로 심거나 씨를 뿌렸다.
그래도 여전히 ‘먹고 놀자’는 생각에는 충실하다. 주말 농장에는 느지막이 오후 1~2시에 도착해 어른들은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거나 돌아다니며 돌도 줍고 동물 구경도 하며 논다. 부모들은 살이 찌는데 아이들은 놀기 바빠서 살이 빠질 정도다. 놀다가 심심하면 밭에 물도 주고 잡초도 뽑고 수확도 해서 돌아온다. 처음부터 너무나 좋아했던 지안이는 매주 농장에 가는 주말만 기다린다. “이게 바로 체험학습이지~”를 연발하며 농사일도 하고 올챙이도 잡으며 주말농장을 1000% 즐긴다. SNS에서 동동보로 더 유명한 리안이는 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놀고 싶어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누구보다 바삐 돌아다닌다.
지안이는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즐겨 본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학원에 다니느라 바빠서 밖에서 만날 시간이 없고, 워킹맘인 엄마 역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워낙 자연을 좋아해 주말농장에 가면 스마트폰은 치워두고 자연에서 놀이거리를 찾는다. 집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수동적인 재미를 받기만 한다면, 자연에서는 능동적으로 재미를 찾는 셈이다. 주말마다 아이가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기게 되면서 그동안 엄마가 겪어온 ‘주말 스트레스’를 덜어낸 것도 부가적인 장점이다. 물론 도시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이 주말농장에 다녀오는 것으로 크게 바뀌는 건 아니다. 도시의 아이로 살아가는 모습은 시대가 변화하는 가운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찾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이 위안과 보상이 되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준다.

The Children and the Sea

아이들이 먼저 반한 양양 살이
셉템버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문병경 실장, 찬휘(13세), 아휘(10세) 가족
시원하고 다디단 바람, 빛을 받아 부서지는 파도, 눈이 쨍할 정도로 푸릇한 계곡과 산에서 아이들과 산책하며 보내는 시간은 이곳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든다.
감성적이고 감도 높은 가족사진으로 유명한 셉템버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문병경 씨는 올해 봄, 3년 동안 살던 판교의 단독주택을 떠나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 양양으로 이주했다. 서울 근교도 아니고 강원도 양양이라니 의아할 법도 한데 의외로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2~3년 동안 여름, 겨울마다 강원도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모두가 반해버렸다. 이전에도 사는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보헤미안 라이프를 즐겼던 그녀답게 아이들이 원하자 오랜 고민 없이 과감히 양양 라이프를 결심했다.
물론 12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로 살았던 자신에게도 쉼의 시간이 필요했다. 삶의 질을 좇아 이곳저곳 떠도는 행복한 유랑자를 꿈꾸는 그녀와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닮은 두 아이에게는 오히려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1년의 반 이상 해외 출장을 다니는 남편도 아내의 결정에 응원을 더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아이들은 작은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학생 수는 이전 학교에 비해 반 이상 적은 아담한 학교다. 앞뒤로 논과 산의 전경이 펼쳐지는 집도 구했다. 찬휘와 아휘는 낯설 법도 하건만 전에 여행 다녀온 우붓과 비슷하다고 오히려 더 좋아한다. 서울에서 살 때도 사교육을 받지 않았던 터라 하루 일과가 바뀐 건 크게 없다. 두 아이는 학교에 갔다 오면 바닷가로 나가 그림을 그리거나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자연과 가까이 지낸다. 문병경 씨에게도 바닷가에 그늘막 텐트를 치고 모래밭에서 뛰노는 아이를 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힐링 타임이다. 주말에는 수산항이나 남대천에 나가 온 가족이 함께 낚시를 한다. 작은 물고기를 낚을 뿐이지만 서울에 살았다면 상상도 못할 재미다. 어스름히 땅거미가 지는 시간, 양양종합운동장에 나가 아이들과 땀이 날 정도로 신나게 러닝을 하는 것도 이전에 없던 즐거움이다. 한적한 운동장에는 트랙, 잔디구장뿐 아니라 작은 무대도 마련돼 있다. 가끔 아휘의 친구들이 모두 모이는데, 운동장을 한참 뛰다가 신이 나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놀기도 한다.
서울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시원하고 다디단 바람, 빛을 받아 부서지는 파도, 눈이 쨍할 정도로 푸릇한 계곡과 산에서 아이들과 산책하며 보내는 시간은 이곳의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든다. 과천에 있는 스튜디오까지 출퇴근이 제법 힘들 법도 한데 이전보다 삶의 만족도가 배로 높아졌다고 말하는 문병경 실장. 이곳에 이사 온 뒤로 일주일에 두 번만 출근을 하는데, 고속버스를 타고 막히지 않으면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디오북을 들으며 차창 밖 풍경을 보는 기분도 이전에 없이 새롭단다. 또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지만 지금의 시간을 아이들과 충실히 즐기고 싶다.
Editor_ Hwang Sun Young
Cooperation_ 시공사(www.sigong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