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ation of Sapiens Myth & Hero

사피엔스의 상상력, 신화와 영웅.

그럼에도 먼 훗날 AI 시대에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 상상력이라 한다면, 아이와 함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일리아드부터 차분히 함께 읽고자 한다.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엉덩이 탐정>, <좀비고등학교>, <마법천자문>, <쿠키런 서바이벌 대작전>, <나무집> 시리즈 등은 요즘 서점가의 인기 어린이 도서 리스트다. 한 달에 700여 권씩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어린이 도서 시장은 일반 책과 마찬가지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다면 비록 베스트셀러 리스트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스테디셀러의 강자는 어떤 책일까?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간 출간된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하필이면 왜 신화일까?

사실 앞에 소개한 인기 책의 기본 얼개도 모험, 마법, 작전 등으로 설계되어 있다. 무럭무럭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박진감, 신비감, 정의로움, 용맹함으로 무장한 영웅들의 활약상은 마음을 단번에 빼앗을 만큼 매력적이다. 이른바 현대판 신화와 영웅 이야기가 동심의 중심이란 말이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다루는 스케일이나 양적 규모 면에서 여타 나라들의 신화를 압도적으로 제압한다. 카오스 상태에서 천공신 우라노스가 나타나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결혼하여 거인족 티탄들을 낳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 디오니소스 등 그 후예 신들을 다 외우기도 힘들다. 이들은 사람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지혜와 힘을 가졌으나 인간과 마찬가지의 실수와 욕심을 부리는 인격신이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신화에는 몇 가지 흥행 요소가 있다. 먼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라의 박혁거세, 고구려의 주몽, 가야의 김수로가 대표적이다. 인도에도 있다. 베다 신화의 신 중 하나인 브라만이 물에 떠 있는 황금알 나라야나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페니키아의 신화에도 바람과 욕망의 신이 알 모양 모트를 낳고 이 알에서 태양, 달 등 모든 천체의 별들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이런 류의 신화는 대개 창조 또는 건국 이야기의 서두를 장식한다. 태양 또는 하늘의 자손이란 것을 강하게 심어주기에 ‘알’만 한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신화의 또 하나의 요소는 영웅의 등장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페르세우스와 테세우스 캐릭터는 용감한 모험가다. 북유럽 신화에서 괴물 그렌델을 무찌른 베어울프 그리고 아스가르드의 토르는 전쟁 영웅이다. 또한 수메르의 길가메시는 고난을 극복하고 영생한 인간이자 신이다. 무조건 강하다고 영웅이 아니다. 이들처럼 고난의 경험 그리고 승리의 명분이 뚜렷한 공감 스토리가 있어야 비로소 영웅이 된다.
마지막으로 꼽는 요소는 신들이 사는 곳이다. 신성하고 신비로운 그들의 터전은 등장과 동시에 인간계를 주눅 들게 한다. 환웅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 김수로왕은 구지봉,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올림포스산을 배경으로 한다. 당연하지 않았을까? 인간을 늘 한눈에 굽어봐야 했고, 자신이 이들보다 월등한 권력 위에 있음을 보여줘야 했으므로.

신화는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왔을까? 합리적 상상을 해본다.

선사시대 수렵과 채집을 하며 공동생활을 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무엇이 가장 두려웠을까? 천둥, 번개, 홍수 같은 자연현상이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두렵고 위대한 파워를 가진 존재가 부리는 조화라고 누군가 떠들고 다녔을 테고 또 그것을 쉽게 믿었을 것이다. 이는 애니미즘(바람·돌·강물), 토테미즘(독수리·사자 등)과 주술적 형태의 샤머니즘으로 발전하여 재앙이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경배로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인간의 모습과 감성을 지닌 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났다. 그는 비범함과 고귀한 혈통을 가진데다 신비로운 출생을 했으며, 많은 사람의 존경과 숭배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왜냐하면 이 영웅신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재앙도 없앴고,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도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구전에서 시작했다. 상상력이 동원되었다고 봐도 좋다. 그래서 어떤 것은 설화로 머물고 또 어떤 이야기는 신화로 구축된다. 심지어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종교도 생겨난다. 현대로 넘어와서도 현재 진행 중이다. 아이들의 만화와 이야기책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엄청난 키덜트 팬덤을 가진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 미드 <왕좌의 게임> 역시 신화적 요소와 영웅 스토리가 기반이다.
신화의 무력 동원, 계급의식, 남존여비 등 일부 요소는 아이들에게 안 좋은 선입견을 심어줄 여지가 분명 있다. 그럼에도 먼 훗날 AI 시대에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경쟁력이 상상력이라 한다면, 아이와 함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일리아드부터 차분히 함께 읽고자 한다.
Writer & Illustration_ Kim G.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