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Vintage Life

1년에 네 번, 파주의 한 창고에 짧게는 30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 된 가구들이 컨테이너에 실려 들어온다.

이 만만치 않은 일을 10년째 해내고 있는 이들은 GU 빈티지숍(@guvintageshop)의 이보람, 박혜주 부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오픈마켓을 여는 두 사람은 현재 미국 뉴저지에서 두 아이 필, 안나와 함께 살고 있다.  

지난 9월 5일, GU의 오픈마켓이 파주에서 열렸다. 태풍 링링의 북상 소식을 들으며 걱정과 설렘을 안고 찾아간 그곳에서 우려와 달리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동료처럼 지낸다는 두 사람은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꼭 닮은 모습이다. 진지한 얼굴로 빈티지 가구 얘기를 하다가도 서로 눈길이 마주치면 동시에 픽 웃음을 터트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GU의 소식을 전하는 아내 혜주 씨와 비디오 작가이자 GU의 창의적인 일을 담당하는 남편 보람 씨. 두 사람은 뉴욕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부부가 됐다.

엄마 아빠를 따라 어릴 적부터 빈티지 가구를 자주 접한 아이들. 혜주 씨는 지금의 경험이 아이들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연상연하 커플인 이 부부는 혜주 씨가 마케팅을 맡고, 사고가 좀 더자유분방한 보람 씨는 GU에 색을 입히는 일을 담당한다. 혜주 씨는 가게에 들른 손님들에게 친절히 가구를 설명하는 역할도 맡는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부부는 그렇게 모자란 곳은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내며 15년을 함께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낭만적이게도 뉴욕 맨해튼의 한 지하철 안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브루클린의 미술학교에 저는 대학원생, 보람 씨는 학부생으로 다니고 있었어요. 학교에서는 거의 만날 일이 없었는데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치게 됐죠. 이야기를 해보니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더라고요. 영화 취향이나 생각 등이 무척 비슷해서 말이 잘 통했어요. 첫 데이트에 독립영화 극장에서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을 본 게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만난 지 2년 후 두 사람은 뉴욕 퀸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듯 낡은 공장 건물을 고친 빈티지한 공간에서 말이다.

2018년까지 운영했던 미국 뉴저지의 쇼룸.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 여전히 그립고 아쉬움이 남는다.

서로 다른 시대와 국적을 가진 빈티지 가구가 한자리에 모여 묘한 조화를 이룬다.

집이 있어 판매하기 힘든 가구는 대부분 네 식구의 집으로 향한다. 덕분에 미니멀리즘은 다음 생에서나 가능한 얘기가 됐다.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는 게 가장 큰 관심사인 디지털 키즈 필과 고양이를 돌보고 요리하는 걸 즐기는 아날로그 키즈 안나.

빈티지 라이프의 시작

GU를 시작하게 된 건 둘째 안나가 태어나기 1년 전쯤이다. 그당시 혜주 씨는 대학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한 뒤 뉴욕의 Perkins&Will이라는 건축·인테리어 설계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람 씨는 상업 광고와 독립영화를 편집하는 프로덕션에서 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뉴욕의 집값을 감당하려면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던 터라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두 분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중고 숍을 운영하셨는데, 거기 물건을 뉴욕 첼시의 빈티지 마켓에 팔면서 GU 빈티지숍을 시작하게 됐죠.”

그 이후 둘째 안나가 태어나고 혜주 씨는 산후우울증과 향수병이 겹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가 됐다. 결국 보람 씨는 한국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지금 오픈마켓을 여는 파주도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곳. 서울과 꽤 먼 거리지만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헤이리에서 6년 정도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했는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껏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있죠.”

파주에서의 시간은 아이들에게도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다. 특히 초등학생 시절을 파주에서 보낸 아들 필은 이곳의 생활을 여전히 그리워한다. 집값이 비싸거나 학군이 좋은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이라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을 간직한 까닭이다.

“5층짜리 아파트 단지에 살았는데 건물이 낮아서 건너편 야트막한 산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공부나 성적에 대한 압박 없이 방과 후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피구나 딱지치기를 하며 실컷 놀았죠. 헤이리 예술 단지를 자기 마당처럼 누비고, 주변의 커피 공방이나 도자기며 사진 공방을 운영하는 분들에게서 좋은 영향도 많이 받고요.”

자연과 예술을 벗 삼아 자유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덕분일까. 아이들은 일곱 번이 넘는 이사와 잦은 환경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커왔다. 파주처럼 자연이 가까이에 있고 낮은 건물이 자리한 뉴저지의 분위기도 아이들이 이곳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금 살고 있는 건물은 3층짜리 목조 아파트로 일반적인 아파트가 아닌 펜션 같은 분위기다. 주방과 다이닝 공간, 거실이 훤히 뚫려 있는 구조인데, 혜주 씨는 주로 주방 식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거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 사랑하는 가족과 고양이가 소파에 둘러앉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거실 창문 앞 작업 공간은 보람 씨의 지정석. 일을 하는 중간 중간 창밖에 펼쳐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가을 중학생이 된 아들 필은 사춘기 소년답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었다. 엄마 아빠의 손을 벗어나 직접 자기 옷을 고르는 쇼핑을 시작했다는 게 내심 기특하다.

아홉 살인 딸 안나는 여전히 엄마 아빠와 노는 게 가장 즐거운 사랑스러운 막내. 엄마랑 같이 요리를 하거나 아빠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따로 보내는 시간이 늘었지만 여전히 가족끼리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여행을 다니며 함께 추억을 쌓아간다.

지난여름에는 아이들과 17일간 유럽으로 건축 테마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1년에 네 번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일을 할 때도 아이들이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빈티지 가구를 구입하기 위해 옥션하우스에 방문하거나 작년까지 운영한 미국 뉴저지의 창고도 아이들에겐 놀이터이자 새로운 경험을 쌓는 세상이었죠. 가까이에서 부모의 일을 접하다 보니 아이들이 저희를 많이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아들 필은 요즘 세대답게 유튜브 구독자 늘리는 방법이 가장 큰관심사다. 엄마 아빠보다 더 GU의 인스타그램에 신경을 쓴다. 어떻게 하면 팔로워 수를 늘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주기도 한다.

둘째는 요즘 요리와 고양이에 빠져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고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준다든가 가족을 위해 김밥을 만들기도 한다.

“큰아이가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요즘 아이라면, 작은아이는 좀 더 아날로그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떻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지지하고, 아이가 최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안나는 엄마 아빠를 닮아 손으로 사부작사부작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한다.

지난여름 아이들과 다녀온 유럽 여행. 그간 보고 싶었던 건축물과 빈티지 가구를 잔뜩 만나고 왔다.

지난여름 아이들과 다녀온 유럽 여행. 그간 보고 싶었던 건축물과 빈티지 가구를 잔뜩 만나고 왔다.

사람들의 손길, 시간의 흔적 등 빈티지 가구에는 새 가구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 부부가 빈티지 가구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주의 한 창고에서 1년에 네 차례 미국 빈티지 가구를 만나는 오픈마켓이 열린다. 마켓을 열지 않을 때는 사전에 연락한 뒤 창고에 방문할 수 있다.

15년 차 부부이자 10년 차 동료인 혜주 씨와 보람 씨.
좋은 디자인 가구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그들의 보물창고

GU Goldmine Unlimited의 약자로 ‘끊임없이 보물이 나오는 금광’이라는 의미다. 그 뜻처럼 부부의 하루는 보물을 찾는 데 쓰인다. 하루 평균 120km를 운전하며 위로는 오하이오, 아래로는 버지니아 주까지 손수 물건을 구하러 다닌다. 사입부터 픽업, 포장까지 모든 일을 부부가 직접 해내기 때문에 힘든 점도 상당하다.

“그만두고 싶은 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요. 먼 거리에서 사업을 운영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하는 일도 점점 늘어나고 육체적으로 힘든 점도 많고요.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사람들 때문인 것 같아요.”

빈티지숍을 운영하면서 든든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는 부부. 손님이었다가 친구가 되거나 자신들의 가구로 인테리어를 한 뒤 사업이 번창했다는 분들도 있다. 고객뿐 아니라 딜러, 함께 일했던 친구들을 떠올릴 때마다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올해 들어 부부는 그동안 운영해온 작은 가게에서 벗어나 사업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가고 있다. 처음으로 직원을 맞이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마음 맞고 재능 있는 친구들에게 일터 이상의 것을 알려주며 함께 성장하는 회사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9월부터는 그동안 준비해온 GU 사옥 공사에 들어갔다. 파주 헤이리에 터를 잡은 이곳은 내년 봄 완공될 예정이다. 지금보다 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이 가족이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Editor : Jeon Mi Hee (Freelanc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