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Want to Know ‘Real SKY Castle?’

‘진짜’를 만나려면

‘진짜’가 있는 수준까지 가야 하나니

“이번에는 내 말 들어요, J 엄마. 일단 내가 등록해줄 테니, 긴 설명은 만나서 듣는 걸로 해.”
어느 요일에 수업을 받게 되는지, 강사는 누구인지, 어떤 아이와 팀이 되는지 따위는 하나도 묻지 못했다. 애초 질문은 내 몫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A 엄마의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받는 것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하는 엄마들은 자신이 만나 교육 정보를 나눈 이들이 ‘돼지엄마’라고 믿지만, 실은 그 정보란 것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엄마들 모임에 몇 번만 나가면 알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진짜’는 그렇게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짜’는 아무에게나 ‘불리지’ 않고, 털끝만큼도 떠벌리거나, 타인 앞에서 본인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겸손한 태도로 ‘듣는 자’이고, 최후에 조율하는 자이며, 마침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는 ‘고매한 자’다. 내가 ‘고매한 자’인 A 엄마를 만난 것은 예비 초등학생들이, 그토록 들어가기 어렵다던 영어학원의 톱 클래스에서다.
1000명이 넘게 테스트를 보지만, 톱 클래스는 딱 6명으로만 구성된다. 최고 레벨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에 대해 궁금하다면 금세 알아낼 수 있었다. 수백만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 사고력 수학 학원, 상위 3%만 입학 가능한 영재 교육원이 그들의 교집합이었기 때문이다. 생계형 워킹맘을 둔 아이, 그들에게 ‘듣보잡’일 타지의 변두리 유치원을 졸업하고 대치동에 입성한 J에게 그들은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유치원에서는 리딩 레벨이 어느 정도였는데요?”
드레이프가 예사롭지 않은 화이트 셔츠를 입은 한 엄마가 성급하게 물었다. 분명 같은 반에 편성되었지만, 그들은 의심이 많았다. 함께 편성된 그룹이 최고가 아니라면, 중복해서 시험 본 다른 학원의 톱 클래스로 옮길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었다. 그들이 제시하는 질문의 허들을 하나둘 넘어 내 아이의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내게 남은 마지막 관문이었다.
엄마들의 질문이 차례로 쏟아졌다. 하지만 오직 한 명, A 엄마는 ‘고매한 자’였고, 어떤 상황에도 갈급해하지 않았다. 엄마들의 질문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찻잔에 머물던 입술을 살며시 뗀 채 A 엄마가 말했다. “J는 언어에 재능이 있어 보여요. 참 잘 챙겨주신 모양이에요. 대치동에는 없는 유형이에요. 조심스러운 의견이지만 J는 미국 교육도 잘 맞을 것 같은 친구예요.”
반백에 가까운 은발 머리에 수수한 차림새, 안경 너머로 상대방을 응시하며 내가 지금 네 이야기에 이토록 귀 기울이고 있다는 듯한 겸손한 제스처, 단정한 목소리까지. 흔히 사용하지 않는 문어적 어휘들로 조합되었지만 전혀 어렵게 들리지 않는 그녀의 말투는, 애쓰지 않아도 친절함과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아이 연령대에 비해 제법 나이가 있어 보였던 A 엄마는 ‘고매한 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2대째 의사 집안, 국립대학병원 의대 교수인 남편, 이글브룩(Eglebrook)부터 초트(Choate)까지 미국 톱 보딩 스쿨을 거쳐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첫째, KMO 금상 수상에 물리 올림피아드와 화학 올림피아드 석권, 서울 과학고를 졸업하고 의대에 입학한 둘째 그리고 늦둥이마저 빠짐없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둔 엄마였다. 집안은 또 어떤가. 시댁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명문가에 그녀의 친정 역시 재계와 학계, 예술 분야에서 촘촘한 인맥을 자랑했다. 그녀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싫어했고, 예의 없는 부류를 혐오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조금은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고매한 자’에게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는 자, 마음속 의심을 그 자리에서 드러내는 자, 그게 나였다. 하지만 A 엄마는 이런 솔직한 나와 천성이 밝은 J에게 호감을 보였다. 딸아이가 대치동으로 입성한 일곱 살 이후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자연스럽게 그 그룹에 끼어 A 엄마의 선택을 따라왔던 나는 한 번도 잘못된 결과로 후회한 적이 없었다 대학 부설 영재 교육원 대비 과정, 프랑스어영어 특강, 각종 외부 경시대회를 함께 준비하며 그녀가 보여준 선의는 세련되면서 한편으로 깊었고, 자연스레 나의 의심도 사라졌다.

베일에 쌓인 수업,

고매한 자를 따르는 엘리트 부모들

‘고매한 자’ A 엄마의 수업 제안 브리핑은 언제나 간결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 살이 될 무렵, 그녀가 내민 수업의 조건은 정말이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의 정원은 6명이지만 부모 중 한 명이 수업을 함께 듣는 것이 필수로 총 12명이 수업에 참여한다고 했다. 수업을 하는 학원의 이름도 비공개,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선생님은 팔순에 가까운 연령의 학원 원장이라는 정보만이 주어졌다.
잦은 출장과 과다한 업무로 토요일 오전 수업은 남편의 동의와 지지가 없다면 진행할 수 없었기에 망설이고 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A 엄마는 단호하게 내 몫까지 선결제해둘 테니, 학원에서 보자고 말했다. 수업 첫날, 늦도록 이어졌던 회식 때문에 늦잠을 자버려 세수만 겨우 한 채 아이를 차에 싣고 A 엄마가 보내준 좌표대로 학원에 찾아갔다. 교실 문을 열고나서야 나는 ‘‘‘고매한 자’의 선택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구나”를 보게 되었다. 교실 안에는 몇몇의 아빠와 엄마가 아이 옆에 앉아 수업을 대기하고 있었다. A 엄마의 주도로 모인 이 팀에서 내가 아는 아이는 A밖에 없었다. 학교도 저마다 달라서 대치동 인근부터 분당, 목동까지 다양했다. 비밀스러운 이 수업의 정체는 사고력 수학으로 총 6개월 동안 진행되는 프라이빗 코스였다. 딸아이 옆에 앉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업을 진행할 학원장은 친정아버지보다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그는 대치동에서만 30년 넘게 수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아이들을 KMO는 물론 IMO로 키워내고, 그들은 다시 이공계 교수나 의대 교수가 되어 자녀들을 이리로 보낸다고 했다. 춘천, 울산, 제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수학 좀 한다는 아이들을 받아서 수업을 해보고, 가능성 일명 ‘싹수’가 없으면 받지 않는 식이었다. 요약하자면 수업은 실력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그 이상을 진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오로지 그가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어머님,

‘만들 수’ 있으니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실력이 부족해도 만들 수는 있어요. 대신 예의 있어야 하고, 열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학생이어야 합니다. 내 방법을 무조건 믿고 따라오면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내 수업을 수학과 교수들도 듣습니다. 초등생은 처음 가르쳐봅니다. 특히 이렇게 어린 친구들은. 그런데 여기 계신 A 어머니가 저와 인연이 깊습니다. 그 인연으로 제 일생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수업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수업을 듣기만 해야 하고, 모든 필기는 부모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이 수업에서 부모가 필요한 이유였다. 아이와 수업을 함께 들으며 필기를 하고, 그 필기를 토대로 복습을 시키는 역할이 주어졌다.
오리엔테이션 뒤에는 커리큘럼 소개가 이어졌다. 대수와 도형을 6개월에 걸쳐 마스터하며 초등 과정의 수학을 계통으로 쭉 빼는 것. 말이 초등 과정이지 결국 중등 수학의 기초 개념을 알기 쉽게 쪼개 놓은 것이었다. 대수는 그나마 나았다. 기하 수업은 중학교 3학년까지의 기하를 다루기 때문에 모든 도형을 부모가 직접 모눈 종이에 일일이 그려야 했다. 3시간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몸을 비틀거나 딴짓을 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부모들은 아이의 옆구리를 꼬집거나, 눈을 흘기며 온갖 눈치를 다 주었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어리고 수업의 내용이 어려웠음에도 그중에는 서울 과학고에 출제된 수학 문제를 한 번의 힌트만으로 정답을 내는 놀라운 실력의 아이도 있었다.
필기의 달인이자 문제 해석을 명쾌하게 해내던 한 엄마는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거쳐 글로벌 기업의 임원이었다. 그 집 아이는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잘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 했지만, 다음 수업에 나타날 때는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해오곤 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수업을 진행하면서 숙제를 도와줄 과외교사를 따로 두고 있는 눈치였다. 음대 출신 엄마 대신 수업에 참석한 교육 대학의 수학교육과 교수인 아빠는 가장 열성으로 질문하고, 쉬는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시키기도 했다 . J는 수업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그렇다고 수학에 재능이 있어 보이진 않았고 아이를 밀착해 과외 교사처럼 케어하기에는 맞벌이 부부에게 무리였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는가

6개월 동안 수업을 진행하며 가장 놀란 것은 이공계 출신의 남편이었다. 지방에서 사교육 없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는 내심 대치동의 이런 시스템을 한심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6개월 동안 그는 달라졌다. 교재를 꼼꼼히 훑어보고, 나 대신 두어 번 수업에 참석한 이후 이 수업이 수학의 뼈대를 세워주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눈 깜짝할 사이 6개월이 흘렀고 아이들은 뿔뿔이 다음 스텝의 학원으로 흩어졌다. 이 수업을 들으며 수학 학원을 한 개만 다니는 아이는 J뿐이었다. 고작 열 살의 아이들은 초등 속진 과정을 거쳐 중등 수학 선행을 시작해 여러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력 수학으로 포장된 이 수업은 실은 선행 심화였고, J는 절반도 이해 못한 채 6개월의 코스가 마무리되었다. 돌이켜보면 A 엄마의 선택은 늘 그녀와 그녀의 아이에게만은 옳은 ‘결과’를 가져왔다. 수업을 들을 준비가 충분했던 것이다.
J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그 학원의 자체 교재를 책꽂이에 꽂아 놓고는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채 4년이 흘렀다. 그사이 A 엄마의 스케줄은 난이도가 높아졌음은 물론이고 그 밀도는 높고, 속도는 빨라져 나는 그녀의 선택을 따르기에 점점 어려워져 멀어져 갔다. 진짜를 만나려면 어떡해서든 진짜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하는데 여전히 썩 괜찮은 성적을 내는 J 지만, A와 A엄마의 보폭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진 것이다.
얼마 전 새로 옮긴 수학 학원에서 고등 수학 과정을 배우는 중인 J가 책을 챙기다 말고 ‘문제의 그 수업’의 교재를 ‘쓱’ 꺼내서 넘기고 있었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얼굴로 돌아선 가J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말했다. “내가 뭘 배운 거야….” 어려운 고전작품을 젠체하며 읽어대고, 그 내용을 다 이해했다고 믿었던 열일곱의 내가 마흔이 훌쩍 넘어 어느 날 서가에서 내뱉었던 탄식의 말과 똑 닮았다. ‘내가 도대체 뭘 읽었던 거지?’

대치동 길거리의

수많은 곽미향

단언컨대 대치동 학원가는 대치동 거주자들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치동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 대치동 학원가다. 얼마 전 화제를 모으고 종영한 TV 드라마 <SKY 캐슬>의 곽미향이 울면서 예서에게 말한다. “나랑 너랑 네 살부터 어떻게 살았는데, 이걸 다 어떻게 준비했는데….”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이 대사는 아이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또 애써 본 엄마들의 가슴을 울렸다. 실제로 네 살부터 영어 유치원과 수학 학원에서 단련되고 학습되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대치동 유치원생들에게 불어닥친 ‘닥수(닥치고 수학)의 열풍’. 대치동에 살면 저학년에 꼭 한 번 찍고 가야 한다는 수학 전문 H학원. 어렵기로 소문난 이곳의 레벨 테스트를 위해 입학 테스트를 준비해주는 소위 ‘서브’ 학원까지 존재한다. 이런 서브 학원은 아파트 단지 안에 공부방 형태로 운영되기도 하는데, 주로 이 학원을 거쳐 KMO를 하고 영재학교나 과학고를 입학한 엄마들이 자식들이 보던 문제집과 단원 평가 시험지를 이용해 수업을 한다. 어렵기로 소문난 이 학원의 단원 평가 시험지는 이미 웬만한 서브 학원에서는 다 가지고 있다. 요즘 대치동 학습식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영어 유치원을 졸업하지 않고, 일곱 살에 초등 영어 학원에 다닌다. 초등 저학년 빅 3 어학원의 문턱이 높다 보니 테스트가 어렵지 않은 일곱 살에 미리 가서 앉아 있는 것이다.
또 하나, 3시 반에나 끝나는 영어 유치원 대신 어학원에 다니면 비교적 일찍 끝나 수학 학원에 다닐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 잘나가는 수학 학원들의 입학 테스트가 아이들 앞에 높은 허들처럼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재원생 수를 자랑하는 대치동의 사고력 학원인 S학원의 프리미어반이 되기 위해 과외를 하고, 이 학원의 선생님이 나와서 만든 학원이 대치동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 신흥 강자가 되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모두 다음 스텝의 학원을 가기 위해서다. 정해진 스텝처럼 그 다음, 그 다음 계단을 향한 대치동 길거리의 수많은 곽미향들은 오늘도 아이를 태우고 대치동 라이드에 나선다.
Writer_ Unskilled Mom
Illustration_ Lee Hyun 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