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erfect Mate

자녀 교육을 하는 엄마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과 학급 구성원을 만나 시작된 3월의 불면이 4월이 되면 최고조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학기 초 긴장감 넘치는 초등학교 학사력 정점에 ‘과학’이라는 커다란 산이 있다.

과학의 달 4월의 ‘과학적인’ 시련

학급 임원 엄마의 주도로 개설된 단톡방은 타이밍을 놓치면 수백 개의 메시지 폭탄이 되기 일쑤다. 워킹맘인 영진의 경우 단톡방을 ‘복습’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잠자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면은 먼발치로 도망간 지 오래다. 연이은 학급 총회와 공개 수업, 소소한 엄마들 모임까지 휘몰아치는 스케줄로 3월의 다이어리는 빈틈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3월의 고단함은 4월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 2월 봄방학부터 영진은 수십 개의 문자메시지 폭탄을 받았다. 대부분이 4월 ‘과학의 달’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초등학교의 학사력은 항상 테마가 있다. 5월은 통일, 6월은 호국 보훈… 그중에서도 학기 초인 4월은 ‘과학의 달’로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과학 관련 교내 행사를 치른다. 저학년의 경우 과학 상상화 그리기와 글짓기가 고작이지만 중학년 이상이 되면 물로켓대회와 발명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과학탐구토론대회’다. 교내에서 5~6학년을 대상으로 예선과 본선을 치르면 1위 팀은 해당 교육청이 주관하는 대회에 학교 대표가 되어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렬하게 스마트폰에 꽂히는 문자메시지는 단톡방의 알림음과 짝을 이뤄 끊임없이 수면을 방해했다. 학원 시간표와 해당 강사를 알려주는 등 점잖게 시작한 학원들의 문자메시지는 3월이면 불안감을 자극하는 위협적인 경보로 바뀌었다. ‘과탐토 팀 마감’, ‘1팀 우선 대기 접수 중’. 영진은 다급한 마음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강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학원에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과학탐구토론대회에 함께 나갈 파트너가 있는지의 여부였다. 과학탐구토론, 일명 ‘과탐토’는 같은 학년에서 2명이 한 팀을 이뤄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영진은 학급 단톡방을 다시 열어보았다. 복습을 한다고 했는데도 놓친 것이 있었다. 이미 엄마들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과탐토에 나갈 메이트를 물색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여기저기 내비치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영진은 딸 수완의 친구 리스트를 재빠르게 떠올려봤다. 친한 여자 친구 몇몇을 생각해봤지만 과탐토에 함께 나갈 만큼 적극적인 친구는 마땅치 않았다. 수상권에 진입하려면 대회에 참가할 파트너의 성향이나 역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기를 독점한다거나, 고집이 세서 본인의 의견만을 주장한다거나 하면 곤란하다. 아직은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토론의 입론을 정리하다가도 다투기 일쑤고, 그러면 예선도 통과하기 어려워질 게 뻔하다.
기본적으로 과학책을 많이 읽어서 관련 배경 지식이 많아야 하고, 글쓰기 역량마저 어느 정도 갖춰야 무난하게 입상까지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교내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적합해 보이는 친구가 없었다. ‘학원의 같은 클래스라면 단박에 찾았을 텐데.’ 영진의 고민이 깊어졌다. 수완의 과탐토 메이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완벽한 짝꿍의 발견

발상은 전환이 되는 순간 빛을 발한다. 같은 반에서 메이트를 찾아야 한다는 기준으로 수없이 반복했던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2반 수완 엄마시죠? 00학원 지수 엄마 소개로 전화드렸어요. 7반 이준오 엄마예요. 이번 과탐토에 나갈 짝꿍은 찾으셨어요?”
00학원 지수라면, 수완이의 단짝이었다. 워낙 입학하기 어려운 수학 학원이고 최상위 클래스를 함께하는 친구라 지수 엄마와는 시간을 내서라도 종종 만나는 사이였다. 준오는 지수의 영어 학원 친구라고 했다. 일단 준오나 지수가 다니는 영어 학원이 일정 수준 이상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감이 생겼다.
“시간이 없으니 오늘 저녁에 만나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퇴근길에 어떤 학원에 등록하면 될지 폭풍 검색을 했다. 강사 리스트와 커리큘럼을 대략 정리해둔 파일을 프린트해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준오 엄마는 애초에 아이들을 학원에 맡길 생각이 없었다. 준오 아빠는 S대를 나와 미국과 일본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 교수로 잠깐 지내다 나노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했고, 준오 엄마는 중학교 과학 선생님이라고 했다.
“인근 학원에서는 하는 과탐토 관련 설명회는 빠짐없이 들었어요. 결론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학원 수업은 바쁜 아이들이 잠깐 만나서 생각할 시간이나 만들어주는 것밖에 안 되더라고요. 이대로는 본질에 접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수완 엄마, 저를 믿고 한 번 해보실래요? 어차피 실전은 중등이니까. 학교에서 중등 과탐토도 심사해요. 저, 전문가예요.”
준오 엄마가 영진 앞에 내민 것은 과학탐구토론대회의 예상 질문 리스트와 수업 진행 구조도였다. 학교마다 토론의 주제가 다르고, 매년 주제도 바뀌기 때문에 학원가에서도 예상 리스트를 업데이트해 수업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준오 엄마가 내민 예상 주제 리스트는 누가 봐도 설득력 있고, 요즘 과학계에서 이슈가 되는 사안이었다. 수업 역시 배경 지식이 담긴 프린트를 왕창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번 정리된 읽을 거리를 가지고 왔고, 적절하게 영상 자료를 이용해 아이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식이었다. 시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똑똑한 선택이었다. 유튜브에서 찾아온 자료들은 영어권 뉴스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막힘 없이 듣기에도 충분했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이 들었다. ‘아이들이 성별도 다른데 친분도 없이 팀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준오 엄마의 선택은 남달랐다. 아이들은 각자의 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준오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예쁜 글씨체로 정리하는 것은 수완이가 맡아 진행했다. 환상의 짝꿍이었다.
“애초부터 여자 친구랑 메이트를 하려고 했어요. 남자 친구들이랑 나가면 괜히 장난만 치고, 결정적으로 정리하는 기술이 없어 효과적이지 않거든요. 수완이가 노트 필기도 확실히 잘하고, 성실하면서도 발표력이 상당히 좋다고 들었어요. 지수 엄마가 수완이를 적극 추천하더라고요.”
총 5주간, 수완이와 준오는 스터디 카페를 예약한 뒤 주말마다 3시간씩 집중해 수업을 진행했다. 자료를 찾고 정리해 아이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엄마 영진이 맡았다.
하지만 주제에 따라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것까지가 수업의 핵심이고, 준오 엄마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3~4장에 걸쳐 수기로 쓴 1차 입론지는 준오 엄마가 첨삭을 하고, 영진이 파일링해서 모아두었다. 수업 시차가 지날수록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본인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추는지 알아가는 눈치였다.

과탐토의 정석

그 어렵다던 과탐토의 준비가 술술 풀려가고 있었지만 영진은 한편으로 과탐토를 대비하는 여러 학원에서 교차해 수업을 듣는 수완의 친구들이 어떤 과정을 밟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지수 엄마가 학원에서 나눠줬다며 가져다준 프린트물은 어른들이 읽기도 난해한 수준이었다. 많은 학원에서는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과탐토 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배경 지식이라 불릴 만한 프린트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그것을 요점 정리하게 했다. 예를 들어 ‘산불 방지’가 주제라면 소방학회의 소논문을 다운로드하는 것이다. 요점 정리를 가지고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내서 다시 정리를 시켰다. 이 모든 과정을 3시간에 해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아 결국 입론서는 백지 상태의 숙제로 제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원의 커리큘럼을 보자 영진은 엄마표로 수업을 진행한 것이 내심 뿌듯했다. 교내 과탐토 대회 일정이 잡힌 뒤부터는 수상을 향한 기대감이 점점 높아져 갔다. 어차피 6학년이 학교 대표가 되니 5학년인 아이들이 올해는 워밍업 수준으로 참가하되 3위권 안에 드는 것이 영진의 목표였다.
드디어 과학탐구토론대회 날, 예선을 거쳐 총 3팀이 결선에 진출했고 예상대로 그 안에 수완과 준오 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과 해당 교과 선생님들은 고학년 아이들보다 5학년인 수완과 준오팀이 더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결국 학교 대표는 6학년 팀이 되었다. 하지만 첫 도전에 은상이 어딘가! 내년에는 학교 대표까지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대회가 끝나고 영진은 고생한 준오 엄마에게 밥을 한 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오랜만에 주말 브런치 레스토랑을 예약해 만났다.
“내년에는 우리 아이들이 금상 타서 학교 대표가 되겠죠?”
영진의 포크질에 흥이 절로 담겼다.
“아마도 그렇겠죠. 당분간 관련 세미나도 챙겨 듣고, 중등 애들의 잘한 샘플도 모아봐야겠어요. 무엇보다 수완이랑 준오의 합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역시 엄마표로 하길 정말 잘했어요. 돈은 돈대로 절약하고. 그렇죠?”
영진의 기분은 계단을 오르며 수직 상승 중이었다. 준오 엄마는 식사를 마쳤다는 듯 접시를 한 손으로 밀어내고 영진을 바라보며 지그시 웃어 보였다.
“그런데 수완 엄마, 우리가 한 게 엄마표 수업이었어요?”
테이블 위에 뭔가를 끄적이는 듯한 준오 엄마의 하얗게 긴 손가락을 보며 ‘지금 선물이라도 해야 하나?’ 영진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이 서늘하게 스쳤다.

언스킬드 맘의 초등 학사력 Tip

본 게임을 위한 몸풀이, 초등 과학 관련 교내 대회

과학탐구토론대회부터 자유탐구보고서까지, 과학 관련 교내 대회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 특히 발명대회, 과학탐구실험보고서 작성하기 등은 ‘경험이 나쁠 것이 없다’가 아니라 영재교육원에 입학할 때도 꽤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두가 첩첩산중으로 어려운 과정들이다. 과학탐구실험보고의 경우,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하는 데까지 초등학생인 자녀가 전 과정을 부모의 도움 없이 해내기란 쉽지 않다. 학교에서는 사교육 기관이나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실험하기를 권유하는 편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과학탐구토론대회나 자유탐구보고서 등은 결국 중등 교내 대회를 위한 것이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영재학교나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에게 필수 코스가 된다. 입시의 서막에서 의대나 이공계 교수인 아버지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미 대치동에서는 흔한 일이다. 꼭 특목고 진학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연습을 통해 훈련된 아이들은 확실히 교내 대회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원이나 전문가 부모님의 코칭 대신 순수하게 ‘엄마표’로 교내 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홈페이지와 관련된 패밀리 사이트의 검색과 자료 수집을 권한다. 어찌 됐든 방대한 자료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부모의 몫으로 남는다.
Writer_ Unskilled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