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Power

스마트폰을 통해 온종일 텍스트를 보지만, 정작 책 읽기는 어려워하는 아이들.

그야말로 디지털 난독의 시대다. 읽기는 공감 능력과 연관되어 있고

단지 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힘을 주는 평생의 좋은 습관이다.

아이에게 ‘읽기’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기 위해 부모가 알아야 할 효과적인 방법.

읽긴 하지만 이해는 못한다, 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가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다. 6000여 년 전, 인류는 처음 문자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의 뇌 속에는 문자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회로가 꾸준히 발달해 왔다. 이는 ‘읽기’라는 일련의 과정과 맞물려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두뇌의 활동이다. 활자를 보는 것은 눈이지만 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결국 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구어·口語)을 체계적인 암호(활자)로 만들어 옮겨 놓은 것이 글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먼저 눈을 통해 활자의 시각적인 모양을 인지하고, 그것이 소리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빠르게 변환한 뒤에 이를 단어로서 인식한다. 

이를 해독이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지능, 어휘력, 추론, 개념 형성 과정을 거쳐 단어의 의미와 전체적인 문맥, 끝도 없이 이어지는 줄글 사이의 맥락도 전부 이런 과정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뇌 회로가 최근 급격히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언급된다. 실제로 디지털 기기나 영상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시대 아이들의 경우책 읽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란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 인터넷, 영상 등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를 말한다. 

난독증교육지도사로 저서 <독서로 풀어가는 난독증> 등을 펴낸 휴독서치료연구소 임성관 소장은 이러한 현상을 일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큰 흐름으로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영상은 나쁘고, 글은 좋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이제 한계가 있습니다.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고유한 가치는 물론 여전히 유효하지만 환경의 변화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시대 문화적으로 선호하는 매체, 사람들이 주로 정보를 얻는 매체가 바뀌어 왔어요. 

요즘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읽는 방식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책과 멀어질 수 있죠. 독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텍스트를 쭉 따라가는 것과 동시에 아래로 내려가며 글 사이사이의 맥락을 파악하는 과정인 반면, 영상이나 인터넷의 글은 필요한 부분만 스킵하면서 읽거나 어떤 경우는 이미지만으로 정보를 얻죠. 마치 점을 툭툭 찍듯이요. 이런 걸 반복해서 보면 책이나 긴 글은 읽기 어려워집니다.”

사람의 뇌는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특정 작업을 수행하는 회로(시냅스)를 형성한다. 이 회로가 잘 만들어질수록 작업 수행 능력도 당연히 올라간다. 읽기 회로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니라 태어난 뒤 연령에 알맞은 자극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에 일찍부터 노출된 아이들은 이러한 읽기 회로가 형성될 기회가 줄어든다.

심지어 읽기 회로가 어느 정도 완성된 성인의 경우에도 하루에 6~7시간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 뇌의 읽기 회로가 변형된다. 이를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고 한다. 뇌의 가소성이란 쉽게 말해 ‘우리 뇌는 죽을 때까지 계속 변한다’는 의미다. 

뇌의 신경세포는 유아기 때 폭발적으로 발달해 20세 즈음 성장이 완성되고 이후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서서히 노화하지만 외부의 자극이나 경험, 학습에 의해그 구조나 회로가 재조직된다는 이론이다. ‘나이가 들면 뇌가 굳는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됐다.

이를 근거로 UCLA 난독연구센터의 매리언 울프 교수는 저서 <다시, 책으로>에서 ‘인간의 읽기 능력은 퇴보하고 있다.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 심지어 인류 전체의 인지 능력에는 큰변화가 올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뇌의 무한한 가능성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읽기 독립에 필요한 기초 근력 키우기

이쯤 되면 누군가는 반문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지식이나 정보, 즐거움을 얻는 매체가 책뿐이었지만 지금은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과도하게 디지털 기기를 제약할 경우 역으로 정보가 차단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이다. 맞다. 요즘 같은 시대엔 디지털 문해력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디지털 콘텐츠가 ‘보는 것’에서 그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볼 뿐 그 안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정보의 연결, 감정의 동요, 지식 축적, 몰입의 쾌감은 선사하지 않는다.

일차원적이고 단발성의 읽기만으로는 인지, 사고, 공감, 추리 등 영역을 거의 자극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집중해서 읽을 때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 신경과학자들이 쓴 <제인 오스틴을 읽을 때 당신의 뇌>라는 논문에는 이러한 상관관계가 잘 드러나 있는데,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에 공감하면서 그에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실제로 젊은 세대의 읽기 능력이 점차 저하된 지난 20년간 공감 능력 역시 40%나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디지털 난독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겪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책을 중심으로 한 읽기 위주 교육이 주를 이룬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해력은 아이의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글 읽기가 힘든 아이일수록 학습장애를 겪을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얼마 전 유명 국어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부모들이 1박2일간 길거리에서 줄을 서는 서울의 한 학원가 풍경이 방송되면서큰 화제가 됐다. 디지털 시대 난독의 문제는 이처럼 일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느슨해진 뇌 속의 읽기 회로를 어떻게 되살리고 형성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독서’에 있다.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는 대개 ‘읽기 독립’을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나타난다. 아이가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되면 대부분 부모가 책 읽어주는 것을 멈추는데 그럼 아이는책 읽기를 어려워한다. 따라서 아이가 한글을 뗐다 하더라도 혼자서 책을 무리 없이 읽을 때까지는 부모가 같이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아이의 읽기 수준을 부모나 선생님 등 보호자가 면밀히 살펴보고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 읽기가 어려워 학습이 부진한 아이를 두고 단순히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성적이 나쁘다’고 판단해 속독학원이나 과목별 보습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책 읽기의 기초 근력이 전혀 없는 아이에게 갑자기 다량의 책을 강제로 읽게 하거나 학습식 공부를 강요한다면 난독이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책을 거부하는 등 악화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과도하게 경쟁적으로 책을 읽히는 것 또한 좋지 않다. 읽기의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다독과 속독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마치 퍼즐을 완성하듯 아이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소 부족한 면은 다양한 해결책을 동원해 채워나간다. 책 읽기는 아이가 두고두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글 읽기 실력을 곧학업 성취도로만 평가하는 잘못된 편견 대신, 우리 아이의 글읽기 수준을 한 번쯤 점검해볼 때다.

읽기의 즐거움 되찾기

올바른 독서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은 모든 부모에게 숙제다. 도처에 읽기를 방해하는 요인이 깔려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이유에서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적절한 독서 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필수다. 우선 취학 전 아이에게는 책을 보는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임을 알게 하는 게 우선. 책 읽는 것이 즐거운 놀이라는 인식만 있으면 독서 습관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1 아이의 독서 취향 존중하기
아이들도 편애하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독서 편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큰 문제는 아니다. 당연히 제각각 책 읽는 습관이 다른데 한 권을 오래 읽는 아이가 있는 반면, 같은 책을 수십 번씩 읽는 아이도 있다. 어린아이들은 결말을 다 아는 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똑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므로 염려할 일은 아니다.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면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2 어릴수록 양보다는 질에 집중
아름다운 정서를 담은 그림책이나 글맛을 잘 살린 다양한 표현이 농축된 그림책 등 연령에 맞는 책을 매일 꾸준히 2~3권씩 읽어주면 아이가 ‘읽기’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할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그림책은 연령이 어린 아이의 경우 그림을 보면서 상상력과 이미지 읽는 능력을 기를수 있고, 책을 싫어하는 큰 아이에게는 글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줘 두루 활용하기 좋다.

3 천천히 잘 읽기, 슬로 리딩 학습법
아이가 글자는 읽을 줄 아는데 정작 책을 좋아하지 않거나 글 읽는 걸어려워한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조바심을 내진 말자. 글을 잘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천천히 읽기’다.

한때 ‘슬로 리딩’ 신드롬을 불러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독서법은 글자 그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며 읽는 것이다.

천천히 읽기는 일본의 중학교 국어 교사였던 하시모토 다케시가 창안한 국어교육법의 한 방법이다. 당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3년간 국어 교과서 대신 나카 간스케의 유명한 소설 <은수저>를 읽으며 글을 쓰고 분석하는 파격적인 수업을 시행했다. 한 문장을 읽고 생각하고또 그다음 문장을 읽고 생각하는 식으로 작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되새김질하는 것이 포인트다.

4 올바른 미디어 교육 병행
휴독서치료연구소 임성관 소장은 디지털 기기를 100% 차단할 수 없으면 차라리 효과적인 수용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게 낫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기기, 미디어의 가장 큰 폐해는 지식과 정보의 흐름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것. 연령이 어릴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한데, 아무리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접한다 해도 책을 읽고 생각할 때처럼 뇌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에 부모나 아이들에게 가장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이 ‘비판적으로 보기’다. 어떤 정보나 영상을 볼 때 일단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게 나한테 왜 필요하지?’, ‘나한테 진짜 도움이 되었나?’, ‘정보의 오류는 없나?’ 등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점검하는 것. 영상을 보고 난 뒤 이렇게 한 번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일방적인 전달 구조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또 그 영상(또는 정보)을 보고 나서 어떤 점을 느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감정을 상기시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1분 정도 보다가 껐다면 ‘내가 왜 껐지?’ 하면서 무엇이 불필요하고 불편했는지 생각해보는 식이다. 이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거나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EXPERT TIP
하시모토 다케시가 권장하는 8단계 슬로 리딩

한 문장을 끝까지 읽고 모르는 단어를 조사하는 ‘통독’, 각 문장의 쓰임을 생각해보고 그 장의 핵심 문장을 정하는 ‘주제’, 각 장별로 어떤 내용이 어떤 순서로 쓰여 있는지 요약하는 ‘내용 정리’,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는 ‘단어 연구’, 단어의 의미와 쓰임을 친구와 토론하는 ‘주의할 문구’, 주의할 문구에서 찾은 단어로 짧은 문장을 만들어보는 ‘단문 연습’, 감동받은 문장에 대해 얘기하는 ‘감상’,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읽고 필요한 부분을 외우는 ‘참고 및 활용하기’ 등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읽기 기술을 끌어올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한 작품을 3개월이든 1년이든 맘대로 읽어도 좋다. 마치 해부하듯이 모든 음운과 단어, 문장을 곱씹으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해력까지 키울 수 있다.

Editor : Kim Eun Hyang (Freelanc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