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Life In Jeju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낡은 농가 주택을 개조해 살고 있는 지태와 은우 남매 가족.

작은 텃밭을 가꾸고 마당, 돌창고에서 뛰어놀며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오래된 농가 주택을 개조한 지태와 은우네 집.

작년 봄, 제주로 이주한 지태(8세)와 은우(5세) 남매네 가족. 제주 이주를 결심한 건 엄마 서선아 씨와 아빠 김종건 씨가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제주 보름 살기를 경험한 뒤부터다. 온 가족이 함께 월정리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곶자왈의 환상적인 숲을 천천히 걸으며 느꼈던 행복감을 부부는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더 가까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이유도 컸다. 출퇴근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편집 디자이너 서선아 씨와 캘리그래퍼 김종건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해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옮겼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는 김종건 씨가 서울과 제주를 자주 오가야 했다. 엄마 혼자 두 아이를 돌보는 날이 많아 편의시설이나 병원 등이 가까운 시내에 자리한 아파트를 구해 생활했는데,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 첫째 은우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어 제주 시내에서 벗어난 시골 초등학교를 알아보다 학교 인근에 있는 총 면적 330㎡ 농가 주택을 발견했다. 낮고 기다란 1층 구조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전형적인 구옥으로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 작은 마당과 돌담으로 이뤄진 제주의 농가 주택이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서까래와 미닫이문 등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된 집에 부부는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기본 골조는 그대로 남긴 채 낡은 지붕은 철제 징크로 교체하고 싱크대도 바꿨다. 부엌과 연결된 작은 거실과 방 두 개, 욕실 하나, 다용도실로 이뤄진 안거리는 벽면을 화이트 페인트로 칠해 쾌적하고 심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태와 은우 남매 그리고 엄마, 아빠 네 식구가 집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거실이다. 거실에 넓은 좌식 테이블을 들여 식사도 하고 책도 읽고 때로는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 편이라 방 하나를 침실로 정해 온 가족이 다 함께 잠을 잔다. 두 아이의 발길질에 차이며 잠들지만 부부는 ‘아이들과 같이 자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애틋해진단다. 나머지 방 하나는 남매의 옷, 장난감, 책을 넣어둔 아이들 방으로 꾸몄다.

비가 온 어느 날, 엄마가 만들어준 밀가루 반죽으로 수제비를 빚는 남매

김종건 씨의 캘리그래피 작품을 중심으로 옛집 그대로의 문살과 부부가 즐기는 커피 기구, 가림천이 정돈되어 있다.

거실 안쪽에 부엌이 위치한 구조. 내추럴한 나무 싱크대 위쪽의 작고 긴 창을 통해서도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최고 놀이터, 앞마당과 돌창고

앞마당은 이들 가족이 가장 아끼는 곳이다. 작은 텃밭에 오이, 방울토마토, 수박 등을 심었는데, 채소 가꾸는 일은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시골살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도 할 일이 많다. 놀이처럼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는 것도 돕고, 어른들이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상추 같은 푸성귀를 따서 상에 올리기도 한다. 텃밭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개구리, 바닥에 기어 다니는 콩벌레, 집 안 곳곳에 보이는 거미줄은 지태와 은우의 좋은 놀잇감이자 자연 속 공부 소재다. 덕분에 도심에 살 때보다 아이들은 친구가 더 많이 늘었다. 주말이면 이웃들이 놀러 와 한마당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어우러져 하루를 보낸다. 도심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집 가까이에는 캘리그래퍼 아빠의 작업실인 돌창고가 있는데 비 오는 날엔 온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보기도 하고,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 그림이나 글씨를 쓰며 미술놀이를 한다.

이곳에서 아직 1년도 채 살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밝고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서선아 씨는 자연을 벗 삼아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벅차도록 소중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김종건 씨 또한 아이들과 아내만큼이나 제주에서 선택한 두 번째 집과 작업실에 만족하고 있다.

부부는 아이들이 커서 힘든 일을 겪을 때 지금 집에서 쌓은 소소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보며 마음의 힘을 얻길 바란다. 제주 돌담집에서 가족은 오늘도 한 뼘씩 성장해가고 있다.

아빠의 돌창고 작업실에서 먹과 붓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남매. 아이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과감하고 순수한 붓 터치에 부부는 종종 놀라곤 한다.

제일 큰 방을 가족 침실로 쓰고 있다. 단정한 방 꾸밈과 깨끗한 침구가 눈에 띄는 공간.

낮은 돌담이 펼쳐진 골목을 손을 잡고 사이좋게 걸어가는 지태와 은우. 자연을 벗 삼아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돌담 안마당에서 이웃이 나눠준 옥수수를 먹고 있는 지태와 은우. 제주로 이주해 가족이 얻은 또 하나의 가족이자 친구는 바로 이웃이다

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가끔 파티를 연다.

음식 만들 재료가 부족한 날에는 신기하게도 이웃이 채소며 과일을 갖다 준다.

고수, 상추, 야생화 등을 다양하게 심어놓은 텃밭 정원. 남매가 직접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며 자연의 섭리를 배워간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욕조를 설치하고 정사각 타일로 마감한 욕실에서 남매는 종종 물놀이를 즐긴다.

Editor : Kim Sung Sil(Freelancer
Photos: Suh Sun A(@seo.suna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