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ss & Badness

살아보니 절대 선(善)과 절대 악(惡)이란 게 없다.

고민에 빠졌다. 착함과 나쁨의 기준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건강한 시각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아이들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하다. 어릴 때부터 즐겨봤던 어린이용 만화영화와 드라마가 이러한 이분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의 플롯은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측은 ‘우리’고, 그 반대는 ‘악당’ 또는 ‘나쁜 놈’이다. ‘나쁜 놈’이란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점이 재미있다.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은 매우 공상적이다. 그래서 우주 괴물, 악당 마법사와 지구 수호대, 변신 로봇 등이 항상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오한 교육 철학이 숨겨져 있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다수의 행복과 안녕을 의미한다. 곧 공명심, 의협심, 선의, 배려 등의 이타주의적 가치가 최고의 ‘선’임을 자연스럽게 설파한다. 존 스튜어트 밀과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셈이다. 그런데 아무리 정의와 공공선을 가르치기 위함이라 해도 적을 응징하는 방법으로 무력이 쉽게 동원되는 것은 교육상 좋지 않다.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과 TV 드라마를 보던 때였다. 극중 아주 못된 손님이 가게 주인을 윽박지른다. 어린애가 봐도 손님이 ‘슈퍼 갑질’을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들이 묻는다. “아빠, 손님이 나쁜 놈이지?” 나는 “응, 매우 나쁜 사람이네. 저렇게 욕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절대로!” 그러자 아들의 입에서 “총으로 쏴 죽이면 되잖아! 나쁜 놈들은!” 하는 대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이의 대답에 한 번, 태연스러움에 두 번 놀랐다. “민이야, 아무리 사람이 잘못해도 누굴 때리거나 죽이는 권리는 없는 거야. 말로 해서 안 되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지. 욕한다고 똑같이 욕하고, 때린다고 똑같이 주먹질하고 그러면 똑같은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럴 때 경찰 아저씨가 나서는 거야.”
악을 응징할 때 폭력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은 수시로 교육해야 할 사항이 아닐까.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밥을 먹다가 애가 묻는다. “아빠, 미국은 우리 편이라서 착하고, 일본은 나쁘지?” 이번에도 잠시 깜짝 놀랐지만 차분하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들 왈, “일본은 옛날에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미국이 구해줘서 해방이 되었잖아”. 학교와 교재에서 배운 지식 한도 내에서의 아홉 살 아이의 주장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찜찜함이 남았다. 그렇다고 미국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이라크 침공 등 역사 사실을 언급하며 “민이야, 사실 세상에는 나쁜 나라와 좋은 나라가 나뉘어 있지 않아. 시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선과 악이 엇갈릴 수 있단다”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 순 없지 않은가? 표정은 포커페이스로 아이를 바라보지만 머리는 아이의 눈높이와 인식 수준에서 쉽게 설명할 답변을 재빠르게 찾고 있었다.

“민이야, 네가 한 말이 맞아.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일본은 지금까지도 사과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나쁜 나라야. 그리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을 항복시키면서 우리를 독립하게 만들어주었잖아. 그러니까 너 말대로 좋은 나라가 맞아. 그 덕분에 우리 민족이 주인인 나라에서 떳떳하게 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몇 마디 더했다. “그런데 있잖아. 만약에 네 친구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네가 좋아하는 맛있는 귤을 몽땅 주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야 나쁜 친구야?” 아들 왈 “당연히 베스트 프렌드지. 날 좋아하니까 준 거잖아”. 예상된 답변이었다. “그래? 알고 보니, 귤이 상해서 버리기가 아까워서 너한테 다 준 거라면?” 아들의 표정이 안 좋다. “그럼 나쁜 친구지. 자기가 버릴 것을 주는 것이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치? 그러니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지는 행동보다 그 본뜻을 아는 것이 중요한 거야. 진심으로 너를 위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좋은 사람이야.”
아이가 성인이 되면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정, 학교와 같은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와 회사, 조직 같은 이익사회(게젤샤프트)의 차이를 선별해 나갈 것이다. 그때 스스로 선과 악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 잘 처신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어른들의 사회를 보면 차라리 이런 것도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Writer & Illustration_ Kim G.Soo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교육심리학 박사과정 수학, ㈜ 매스티지데코 대표이사